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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 겪은 일 쓰기 공부 (2)

늙은어린왕자 2010. 7. 9. 19:30

7월 9일 금요일 구름 속에 엷은 햇빛이 비추다.

겪은 일 쓰기 공부 (2)

 

  친구 칭찬 글을 보며 겪은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쓸거리(글감) 고르기로 들어갔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쓸거리만 잘 골라도 글을 반쯤 쓴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은 쓸거리 고르기까지 해보기로 했다.

  “여러분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 일을 겪지요?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여러분한테 있었던 일은 모두 겪은 일입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일을 골라 글로 쓰면 됩니다.”

  내 말에 아이들이 멀뚱멀뚱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설명했다.

  “여러분이 본 일, 들은 일, 한 일 모두 겪은 일이에요. 하루를 지내다보면 일이 얼마나 많아요. 아침에 밥 먹고, 학교오고, 공차고, 공부하고, 점심 먹고, 놀고, 학원가서 또 공부하고, 텔레비전 보고,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일이 모두 겪은 일이지요.”

  칠판에 ‘겪은 일 = 본 일, 들은 일, 한 일’이라고 크게 썼다. 그리고 아무래도 말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예를 하나하나 찾았다. 학교 오다가 지나가는 개를 만난 일, 운동장에서 공놀이 했던 일, 공부시간에 선생님한테 잔소리 들은 일, 쉬는 시간에 딱지 치며 싸운 일, 급식 시간에 편식하는 아이를 본 일, ……. 이것도 칠판에 쓰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럼 이런 일 가운데 어떤 것을 글로 써야할까요?”
  아이들 손이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수많은 일 가운데 어떤 것을 고르자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그 기준이 없다.

  “본 일, 들은 일, 한 일 가운데 하나를 쓰면 됩니다.”

  “자기가 겪은 일 중에서 한 가지를 쓰면 돼요.”

  곰곰이 생각하던 몇몇 아이들이 대답을 내놓긴 했지만 모두 맞지 않았다. 아직 겪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겪은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보고 듣고 한 일이 모두 겪은 일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예를 들었다.

  “아침에 친구와 걸어서 학교에 온 것은 한 일이니 겪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글로 쓸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자주 되풀이되니까요. 그런데 아침에 학교 오다가 어떤 아저씨가 허겁지겁 박물관으로 달려가는 걸 보았다면 어떨까요? 더구나 생긴 것도 특이하고 옷도 남들과 다르게 입은 사람이라면 자세히 살펴보았겠지요. 그 사람이 무얼 하는 지 숨어서 지켜보고 비밀을 알아냈다면 분명히 친한 사람한테 이야기하고 싶겠지요.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걸 글로 쓰면 됩니다.”

  쓸거리 고르는 기준을 한 가지 이야기 한 셈이다. 칠판에 ‘(1)남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일’을 크게 썼다. 다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럼 최근에 겪은 일 중에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일이 있나요? 발표해볼까요?”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손이 쑥쑥 올라왔다. 손을 든 아이들 의견을 모두 들어보았다.

  “쓰기시간에 선생님이 겪은 일 쓰기 설명하신 거요.” (미경)

  “아침에 윤재랑 수인이랑 가연이랑 철봉에서 놀았던 거요.” (은서)

  “화단에서 동협이랑 시현이가 싸운 거요.” (찬기)

  “가연이랑 윤재랑 수인이랑 야구공 뺏기 한 거요.” (수민)

  “아침에 시영문구에 이번 주 일요일까지만 영업한다는 종이 붙어 있는 거 본 거요.” (태현)

  “저번 주에 스케이트장 갔는데 얼음 위에서 넘어진 일요.” (민서)

  “아침에 학교 오는데 참새가 강아지가 싸놓은 똥을 먹고 있었어요.” (동협)

  동협이 이야기에 아이들이 웃었다. 이 정도면 좋은 쓸거리를 찾은 셈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준을 더 이야기했다.

  “생활하다 보면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일도 있지만 꼭꼭 숨기고 싶은 일도 있지요. 이런 일은 남에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글로 쓰면 참 좋아요.”

  칠판에 ‘(2)꼭꼭 숨기고 싶은 일’을 (1) 아래에 잘 보이게 썼다. 그리고 물었다. 

  “남에게 꼭꼭 숨기고 싶은 일이 없나요?”

  이번에는 현수만 손을 들었다.

  “며칠 전에 시험지를 집에 가져갔잖아요. 근데 엄마가 ‘시험을 왜 이렇게 망쳤냐’고 했어요.”

  “그래서 속상한데 남에게 말을 못했구나?”

  “네.”

  현수가 말한 것도 좋은 글감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시계를 보니 벌써 쓰기 시간이 끝나버렸다. 2교시부터 두 시간 연속 전담수업이라서 여기서 이야기를 끊어야했다. 글쓰기까지 이어서 못 해서 아쉬웠다. 전담 시간이 끝나고 쓸거리를 한 가지씩 찾은 뒤 월요일까지 겪은 일을 한 편씩 쓰도록 했다.

  겪은 일 쓰기는 모든 글쓰기의 기초라고 한다. 특히 글쓰기 첫 발을 내딛는 초등학생들에게 겪은 일 쓰기는 아기가 말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 첫 발을 오늘 내딛은 셈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어떤 글을 써올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