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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 삼만 리

늙은어린왕자 2010. 9. 9. 00:47

9월 8일 수요일 흐림

삼만 리


  쓰기 시간에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독서 감상문을 읽었다. 책 제목 일곱 글자로 만든 칠행시 형식의 재미있는 독후감이다.

  ‘엄’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떠난 소년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 ‘리’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리’(이) 이 책을 읽어보면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

  여기서 질문이 들어왔다.

  “선생님, ‘리’는 뭐에요?” (은서)

  옛 거리 단위를 요즘 아이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싶어서 잠시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거리를 나타내는 거야. 예를 들어 십 리는 킬로미터로 따지면 4킬로미터지.”

  “4킬로미터는 얼마나 되요?” (민서)

  4킬로미터는 쉬운 거리인데도 모르는 걸 보니 3학년 아이들은 아직 거리 개념이 약하다는 게 느껴졌다.

  “4킬로미터는 우리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거리야. 그러니까 여기서 삼계동 끝까지지. 여러분이 걸으면 대략 한 시간 쯤 걸리겠다.”

  그제야 짐작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 리는 얼마쯤 되요?”

  “백 리는 40킬로미터니까 여기서 마산쯤 되겠네.”

  아이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삼만 리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왜 벌써 놀랐을까? 엄마 찾아 김해에서 마산까지 가는 걸 상상했을까?

  “그럼 천 리는요?”

  “천 리는 김해에서 서울까지 거리야. 400킬로미터지. 옛날에 선비들이 과거 시험 보러 가던 거리야.”

  “우와 그럼 시간이 많이 걸렸겠네요?”

  “그렇지. 지금은 KTX 타고 가면 세 시간도 안 걸리지만 예전에는 가다가 자고 가다가 자고 해야 해서 한 달 쯤 걸렸지.”

  보름이라고 해야 하는데 잘못 말했다. 하긴 옷도 빨아야 하고 비도 피해가며 가면 한 달쯤 걸렸겠다.

  “그럼 삼만 리는…….”

  몇몇 아이들이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중얼거렸다. 쉽게 계산이 안 나오는지 숫자가 입 안에서 맴돌았다. 

  “삼만 리는 천 리가 서른 개니까 사백 곱하기 삼십 하면 만 이천 킬로미터네. 그러니까 여기서 서울까지 서른 번 가는 거리지.”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그만큼 갔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우와, 그럼 여기서 어디까지 갔다는 거야?”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만 이천 킬로미터라는 거리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여기서 중국 지나 인도까지는 가야 될 것 같은데.”

  아이들은 놀라면서도 상상이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책을 읽었으면서도 ‘삼만 리’가 단순히 멀다는 느낌만 가졌지 실제로 얼마나 되는 지 우리 모두 오늘 처음 계산했다. 아이들이 써낸 독후감을 보니 거리 계산이 도움 됐는지 엄마를 찾아 그 먼 거리를 간 주인공 마르코 이해하고 격려하는 글이 많았다.

  수업을 마치고 삼만 리(만 이천 킬로미터)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구글어스 프로그램으로 재보았다. 서울에서 영국 런던까지 재보니 약 구천 킬로미터 정도 됐다. 반대쪽에 있는 미국 뉴욕까지 거리가 만 천 킬로 정도로 삼만 리와 거의 비슷했다. 아이들한테 말한 인도 뉴델리까지는 겨우 오천 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먼 거리에 ‘겨우’를 붙여도 될 만큼 삼만 리는 정말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