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해어방초등학교의 ooo입니다.
올 스승의 날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스승의 날만 되면 좌불안석인 것이 우리네 형편입니다. 무사히 지나갔겠지요?
저는 올 스승의 날을 조금 색다르게 꾸며 보았습니다. 순전히 우리반 아이들의 의욕과 재능 덕분이었지만 저로서는 교사로 입문한 뒤 가장 뜻깊은 스승의 날을 보낸 것 같네요.
1주일 전부터 내가 교실을 잠시 비우기라도 하면 봉사위원을 중심으로 학급회의를 틈틈이 열어 뭘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더라구요. 언뜻 눈치를 보니 스승의 날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참 기특하더군요.
회의 내용을 엿들으니 '스승의 은혜'를 리코더와 바이올린, 피아노, 플룻 등을 동원해서 합주를 하고, 놀이와 다과를 하자는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준비가 잘 되는가 싶었는데 며칠이 지나면서 회의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다과회를 열어야 되는데 남자 아이들이 학급비(500원)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더니 결국 총무부 아이들이 다과회를 못 열겠다고 하고, 봉사위원들도 스승의 날 학급행사를 할 수 없다며 서로 눈을 흘기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학급회의 시간에 욕설을 하거나 회의시간에 심하게 떠드는 사람한테는 총무부가 벌금을 받겠다고 한 제안이 통과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주로 남자 아이들의 불만이 쌓였던 모양입니다.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해서 이튿날 총무부의 장부를 보니 벌금이 많은 아이는 1000원이 넘고, 대개 500원 남짓 액수가 매겨져 있었습니다. 벌금 내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학급비까지 내는게 어렵다는 것이 그네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불만이 많은 아이들을 불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봐도 벌금과 학급비를 한꺼번에 내기는 힘들겠다. 그렇다면 내가 총무부에 이야기를 해서 벌금을 모두 없애줄테니 학급비는 내라. 학급행사 하는데 대해서는 너희들도 불만이 없잖니?"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총무부 아이들도 수긍을 해서 여태껏 걷어놓은 6000원 가량의 벌금을 많이 낸 아이부터 액수를 정해 돌려주게 했습니다.
봉사위원들과는 행사 계획을 같이 짰습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해서 너희들이 나한테 뭘 해주는 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하고 같이 준비하자. 내가 플룻 연주도 가능하고 기타반주로 노래도 부를 수 있으니 작은 음악회라도 열어보자."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준비하던 행사가 완전히 공개 행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논의를 거듭한 결과 제법 그럴듯한 계획이 섰습니다.
1.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영상편지 띄우기
2. 작은음악회 열기
-'스승의 은혜' 합주(아이들 모두)
-'사랑을 위하여' 4중주
[플룻1(나), 플룻2(김o은), 피아노(엄o영), 바이올린(김o언)]
-피아노 독주(엄o영)
-바이올린 독주(김o언)
-플룻 독주(김o은)
-기타 반주 독창(나)
-춤 공연(우리반 춤 동아리)
3. 다과회와 놀이시간 갖기
작은음악회를 열 때에는 영어, 음악 교과전담 선생님을 초청하기로 하고 며칠 동안 맹 연습을 했습니다. 14일에는 방송국원 2명이 영상편지도 촬영했습니다.
행여나 어렵게 준비하는 스승의 날 행사에 누가 될까 싶어서 아이들에게는 절대 선물을 준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몇몇은 이를 어겼지만요.)
드디어 오늘 산고 끝에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도 플룻 연주와 기타 반주 독창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마음이 떨렸습니다. 사실 기타는 연주한 지가 꽤 오래됐기 때문에 그리 두렵지 않았으나 플룻은 배운지가 얼마 안돼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영상편지를 맨 먼저 보았는데 20여 명이 저마다 불만과 칭찬을 요란스레 늘어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내용에는 신경쓰지 않고 TV 속 자기네들 모습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분위기는 참 좋았죠. 물론 나도 영상편지를 띄웠지만 내용은 비밀입니다.
두번 째 순서로 음악, 영어 선생님을 모시고 작은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스승의 은혜' 합주도 좋았고, '사랑을 위하여' 4중주도 좋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몇 군데 틀려 머뭇거렸는데 진해 군항제와 김해 가락문화제를 휩쓴 실력가 o은이(플룻2)가 잘 해서 잘 넘어간 것이죠. 히히.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독주가 이어지고 드디어 나의 기타 반주 독창! '사랑과 우정사이'라는 피노키오의 노래를 불렀는데 원곡이 고음이라 음을 3단계나 내려서 불렀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생각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럭저럭 마지막 춤 공연까지 정말 기분 좋게 마쳤습니다.
음악, 영어 선생님의 표정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번 공연을 영어점수에 좋은 쪽으로 참고하겠어."
영어선생님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댔지요.
다과회를 마치고 놀이 시간.
시간이 짧아 '가족오락관'에 나왔던 '불어라 월드컵' 한 경기만 열었습니다. 미니축구경기장에 탁구공을 불어 골을 넣는 경기인데 추첨을 통해 부서별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를 했습니다. 온 교실이 떠나라 응원전이 펼쳐지고 아이들은 낯빛이 하얗게 되면서도 경기를 벌였지요. 경기가 너무 격렬해서 승부차기가 많이 나왔지만 재미있게 끝났습니다.
하여튼 오늘 스승의 날, 선물과 꽃다발이 앞에 쌓이고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아이들 앞에 어쩔줄 몰라하는 일상적인 모습 대신, 저로서는 새로운 경험을 한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스승의 날을 꾸며가는 것도 좋을 듯 싶어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계속 수고하세요.
5월 15일 김해에서 ooo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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