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국어수업 시간에는 6단원엔 나오는 '겪은 일 쓰기'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반에서는 1학기 때부터 따로 공책을 준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겪은 일을 써오던 터라 이 공부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만 교과서에 나오니 또 공부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겪은 일 쓰는 방법을 간단하게 알아본 뒤 바로 글쓰기에 들어갔습니다. 교과서에는 글 쓰는 칸이 너무 작아서 별도로 줄 공책 모양을 A4용지에 인쇄해서 글을 썼습니다. 제목으로 붙인 민재의 햄스터 이야기가 이 때 나왔습니다. 먼저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햄스터 / 김민재·진영금병초 2학년
나는 였택가지 햄스터가 섹기를 나을준 물랐다. 그것도 내 마리나. 엄마는 깜짝 놀랬다. 나는 몰랐다. 엄마가 햄스터가 섹기를 나앗다라고 의서 내가 더 놀랐다.
나는 관찰을 할려고 들어갈려고 읫다. 근대 멈첫다. 먼가 무서웟다. 딱 내 손가락 한 칸 만읫다. 신기읫다. 큰 햄스터가 됐스면 좋겟다. 그리고 만이 살았스면 조겠다.
귀협다. 그리고 애고장이다. 넷 다 삼십일에 다 큰다. 그겄도 어재 태어났다. 어재 태어났는지 엄아가 똘똘하고 귀협내 라고 읫다. 한 번 보면 개속 보고십고 나도 똘똘하고 귀협다고 읫다. 건강하게 태어나서 다힝이다.
이재 햄스터가 여덟 마리다. 엄마가 우리 집 햄스터 공장되겠네 라고 했다. (12월 3일)
아마 어떤 '글쟁이'들이 보면 이 글을 보면서 뭔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거다!' 하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글씨도 삐뚤빼뚤, 맞춤법도 들쭉날쭉, 할 말도 문단별로 정리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썼지만 글 속에 장면이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었으니까요. 밑줄 친 곳은 나와 이야기하면서 덧붙인 내용입니다. 그럼 이 글을 어른들이 쓰는 말로 ‘번역’해볼까요?
나는 여태까지 햄스터가 새끼를 낳은 줄 몰랐다. 그것도 여섯 마리나. 엄마는 깜짝 놀랐다. 나는 몰랐다. 엄마가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내가 더 놀랐다.
나는 관찰을 하려고 들어가려고 했다. 근데 멈췄다. 뭔가 무서웠다. 딱 내 손가락 한 칸만 했다. 신기했다. 큰 햄스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이 살았으면 좋겠다.
귀엽다. 그리고 애교쟁이다. 여섯 다 삼십 일에 다 큰다. 그것도 어제 태어났다. 어제 태어났는지 엄마가 "똘똘하고 귀엽네."라고 했다. 한 번만 보면 계속 보고 싶고 나도 똘똘하고 귀엽다고 했다. 건강하게 태어나서 다행이다.
이제 햄스터가 여덟 마리다. 엄마가 "우리 집 햄스터 공장되겠네?" 라고 했다. (12월 3일)
어른들이 쓰는 말로 바꾸어 놓으니 부드럽기는 해도 민재가 쓴 글에 비하면 생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한테 읽어줄 때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평소에 민재는 글쓰기를 못하지도 않지만 썩 잘 하는 쪽도 아닙니다. 눈치 빠른 여학생들이나 글자를 먼저 깨친 남학생들 보다 더디다는 뜻이지요. 민재는 글자는 또박또박 잘 쓰는 편이지만 맞춤법은 안 맞을 때가 많습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은 사실 민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반 남학생 절반 넘는 아이들이 민재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맞춤법이 틀리면 어떻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전달되면 되지요. 사람마다 시간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조금만 지나면 맞춤법은 거의 맞게 되어있습니다. 중요한 건 '표현'이니까 민재 글은 이런 점에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관찰을 하려고 들어가려고 했다. 근데 멈췄다. 뭔가 무서웠다. 딱 내 손가락 한 칸만 했다.
햄스터 새끼를 보러 갈 때 가졌던 조마조마한 마음도 잘 나타나 있고, 새끼 크기를 손가락에 비유해서 나타내니 더욱 실감납니다. '신기했다', '많이 살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태어나서 다행이다', '한 번 보면 계속 보고 싶다'며 새끼 햄스터를 사랑하는 마음도 너무 잘 나타나 있지요.
이 뿐 아닙니다. '애교쟁이다', '똘똘하고 귀엽다'며 덕담도 건네고 '큰 햄스터가 됐으면 좋겠다', '삼십일에 다 큰다'며 쑥쑥 자라라는 기대도 엿보입니다. 끝에 '이제 햄스터가 여덟 마리다'고 한 건 커다랗고 당당한 마침표 같습니다. 햄스터가 건강하고 똘똘한 새끼를 낳아서 뿌듯한 마음이 그대로 배어있습니다. 글을 읽는 제 기분까지 당당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민재 글을 제목으로 뽑고 소개해 보았습니다. 좋은 글은 훌륭한 글쓰기 기술을 가졌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삶에서 저절로 나온다는 것을 민재 글이 말해줍니다.
오늘 아침에 민재가 학교에 오자마자 다가오더니 묻더군요.
"선생님, 햄스터 좋아해요?"
나는 좋아한다고 답했습니다. 민재는 햄스터가 많다며 주려고 했습니다. 표정을 보니 어제, 오늘 내내 햄스터 생각만 한 게 틀림없었습니다.
당장 그 똘똘한 새끼를 얻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햄스터를 좋아하기는 한데 우리 집에는 동물을 안 키워. 식구들이 다들 바빠서 돌볼 수가 없어서 그래."
민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새끼를 두 마리만 남기고 주려고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여덟 마리는 너무 많아. 근데 아직 너무 어리니까 좀 있다가 털이 복슬복슬해지면 우리 반 아이들한테 물어보자."
민재는 알겠다며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민재는 평소 수업시간에 여느 아이들처럼 발표에 잘 참여하지 않습니다. 가끔 순서대로 발표를 시켜도 목소리를 작게 내서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국어 시간에는 아주 자신 있게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뭐니? -- (빗자루 다리)
둘은 뭐니? -- (앵무새 다리)
셋은 뭐니? -- (세 발 자전거)
넷은 뭐니? -- ( )
이렇게 하나에서 열까지 '묻고 답하는 노래'를 하며 빈 칸을 채우고 답하는 놀이를 했는데, 민재가 여덟 번째 고개에 당당하게 손을 든 것입니다. 민재는 평소와 달리 커다란 목소리로 '햄스터 여덟 마리'를 외쳤습니다. 일 년 가까이 한 교실에서 생활했지만 오늘 같은 목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2014년 12월 5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15년 2월호에 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