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책을읽고

청소년의 심리와 삶

늙은어린왕자 2007. 2. 27. 09:27
1. 버림받은 성적표(보리출판사)

2. 날고 싶지만(보리출판사)

3.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또하나의 문화)

 

  지난주 텍스트 가운데 고등학생 이야기 글모음인 ‘날고 싶지만’과 시 모음인 ‘버림받은 성적표’는 구했는데 정작 읽고 싶었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없었고, 김해도서관에도 대출가능하다고 분류되어 있음에도 누가 가져갔는지 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해에서 제일 큰 서점인 ‘오복당’에 가서 사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목록에는 뜨는데 위치가 파악이 안 돼서 못 사고 그냥 왔습니다. 아마 부산의 대형 서점에는 있겠지만 거기까지 갈 시간 여유가 없어서 포기했지요.

  이 책에 집착을 한 까닭은 앞의 두 책은 저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글쓰기회)’ 회원이기 때문에 자주 접하던 글들이어서 입니다. 안 읽어본 책이라면 이런 기회에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지요.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집안의 큰 일 한 가지 치르고 나니 한 주가 그냥 가버렸네요. 이번 주 참고도서도 한 권은 구하지 못했는데 읽고 싶었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기고 끝까지 다는 못 읽었지만 부지런히 책장을 넘겼습니다. 

  저는 우선 글쓰기회에서 엮은 두 책에 실린 글이 청소년의 심리를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봅니다. 글쓰기회에 속하지 않은 선생님이, 그것도 입시가 코앞에 있는 중등학교 선생님이 감히 아이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고 그것을 책으로 엮을 용기를 가진 분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소수지만 이 책들에 실린 청소년들의 삶과 생각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글쓰기회 선생님들은 ‘글짓기’ 보다는 ‘글쓰기’에 무게를 두고 쓰기 지도를 하기 때문에 삶에 밀착된 생각들이 글로 표현되기 때문이지요.

  흔히 글쓰기는 아이들한테 괴로운 일 가운데 하나지만 짐작컨대 이 책에 나온 아이들은 글을 쓰면서 괴롭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삶과 고민을 털어놓음으로서 뭔가 시원한 기분을 느꼈거나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남에게 고민을 이야기만 해도 조금은 마음이 풀리듯이... 물론 일하는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이나 풍경을 보고 쓴 글들은 글쓰기 지도를 하는 선생님의 의도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날마다 문제집만 들여다보고 인터넷, TV 영상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가해진 이러한 선생님의 의도는 결국 자신의 삶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이중의 효과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입시와 관련된 사회현상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회는 분명 미래로 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요. 학교에는 그 동안 열린 교육이다 협동학습이다 ICT활용 교육이다 해서 좋다는 약은 다 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붕괴’라는 말이 일반화될 만큼 학교교육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고 사교육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삶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느낌입니다. 20년 전 저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하루에 10여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했고, 야간 자율학습이 있었지만 요즘 아이들만큼 숨통이 막힐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지요.

  대학 시절 전교조가 창립될 때 선생님들의 집회에 몇 번 가봤는데 그 때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던 노래 가사 속에 이런 구절이 있었지요.

  “죽어간 아이들이 횃불로 살아온다.…”

  또 이런 구호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죽어간다. 참교육을 실현하자.”

  부산대학교 ‘넉넉한 터’에서 이상석 당시 부산지부장님이 외치던 구호였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신문의 사회면에는 성적으로 인한 자살 소식이 심심찮게 오르곤 했습니다. 한 해에 수십-수백 명이 자살해야 할 만큼 공부는 아이들에게 중압감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보다 경쟁해야 할 학생 수는 적어지고 대학은 오히려 늘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입시공부의 강도는 더 세어진 것 같고, 아이들은 괴로워 울부짖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이 초등학교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열린 교육에다 수행평가 제도의 도입, 개별화 교육이 표면적으로 실시되면서 중단되었던 일제고사가 최근 서울시를 시발점으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남에서도 이제 대부분의 학교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다시 치릅니다. 우리 학교의 경우도 김해시내 타 학교와 보조를 맞춰 올해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부활했습니다. 우려스런 일은 지금 맡고 있는 우리 반(6학년) 아이들 중 상당수가 중간고사에 대비해서 밤 11시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했고, 어떤 아이는 학원에서 1주일간 합숙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반의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요즘 숙제내기가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겁이 나는 것이 아니라 숙제를 내도 해오는 아이가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지요. 숙제를 내어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논다고 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각종 학원 수강 때문에 숙제를 할 시간이 없다는데 할 말이 있어야지요. 그나마 몇몇 부모님들은 아직은 초등학생이니까 하면서 저녁 시간만이라도 자유를 주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집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학원숙제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또 상당수입니다. 수업 시간에 걸려서 혼나는 경우도 하루에 한 번꼴 이상입니다. 공교육의 붕괴는 반드시 내부에서 기인한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과연 무엇을 얻게 될까 싶고,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도 아닌데 싶은 생각을 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시키는 부모님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이들 부모가 아니라 사회라고 봐야겠지요. 가방 끈이 짧아서 이미 사회로부터 뜨거운 맛을 본이들이 대부분 일 테니까요 .

  ‘하자센터’는 신문에 소개된 것을 몇 번 봤는데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가운데 나온 대안적 형태의 교육기관이므로 상당히 바람직스럽습니다. 꽉 짜여진 공교육도 문제지만 획일적인 사고와 체계를 요구하는 사회는 더 문제이고, 공교육에서 이탈하는 학생들을 문제시하고 교화하려고만 드는 현실에서 하자센터 같은 대안교육기관이 더욱 많이 생겨서 꽉 막힌 교육의 숨통을 트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자율을 폭넓게 인정해주고, 교과도 다양화시킬 뿐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체험과 창조의 기회를 많이 주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넷에 오른 뉴스를 보니 마산의 합포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정하고 학생관련 행사를 추진하고 있는 소식을 전하고 있던데 비록 소수지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최소한 인격을 가진 주체로 파악하는 듯했지요.

  조한혜정 교수의 글 가운데 고교평준화 문제와, 봉급의 차등 지원 같은 문제는 저의 경우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학교를 특성화시키는 것은 좋지만 지식주입 일변도의 현 교육현실을 그대로 둔 채 평준화를 해제해 버리면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부터 성적이 좋은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한 전쟁이 벌어질 텐데 거기서 지치는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봉급의 차등 지원제도도 과연 무엇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까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교사가 가르친 아이들의 성적이 가장 객관적 기준이므로 그것이 잣대가 된다면 교실풍경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는 자명해진다고 봅니다.

  이 같은 이론에도 불구하고 조한혜정 교수의 책은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 그에 따라 학교가 나아갈 바에 관하여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06.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