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책을읽고

내게 책읽기의 의미는?

늙은어린왕자 2007. 2. 27. 09:26

내게 책읽기는 어떤 의미인가?

 

지난 날 내가 함께 했던 책들을 떠올리려니 민망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독서의 두께가 얇고, 편식에 가까운 독서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접했던 책들을 밝히기에 앞서서 우선 책을 산일을 먼저 써야겠다. 대학 1학년 때인 1988년 겨울 쯤, 동아리 동기 여학생의 생일을 맞아 책을 선물하려고 교대 지하철역 근처 서점으로 갔다. 이사벨 여고와 연결된 지하 서점이었다.

어느 정도 흠모하던 여학생이어서 어떤 책을 고를까 망설이다가 고른 것이 문고판 순정소설이었다. 그 여학생은 책을 받고 제목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뒤늦게 알게 됐지만 한마디로 수준에 미달되어도 한참 미달되는 책이라는 뜻이었다.

밀양이라는 시골에서 제대로 된 책 한 권 접해보지 않고 오로지 입시공부만 해 온 나로서는 좋은 책을 고를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일은 두고두고 나에게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제법 책다운 책을 접할 수 있었는데,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동녘출판사에서 나왔던 ‘철학에세이’다. 선배들이 권해서 사 보았는데 세상을 향해 처음 눈을 뜨게 해 준 책으로 평가한다.

학생회에서 일하던 선배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사회과학 도서를 읽게 된 것이 이때부터다. ‘민족’, ‘민중’, ‘광주’, ‘마르크스’, ‘모순’, ‘혁명’ … 이런 단어들이 많이 들어간 책들을 읽고 사회 참여의식을 드높이곤 했다. 이 때 읽은 문학작품이나 역사, 문화 관련 책들도 대부분 사회의식을 담은 것이 많았는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김일우의 ‘섬사람들’ 등이다.

하지만 교사가 되려 했던 교대생인지라 교육 관련 책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지금은 작고하신 성래운 교수님의 ‘분단시대의 민족교육’을 필두로 이오덕 선생님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삶과 믿음의 교실’, 김진경 선생님의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등의 비판적 시각을 담은 교육평론집과 함께 강순원 교수의 ‘자본주의와 학교교육’ 류의 이론서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때마침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교육민주화 바람이 교대도 비켜가지 않았는데 ‘맥’이라는 교육연구동아리에서 활동하다 보니 문학이나 일상을 다룬 책들은 거의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독서의 지나친 편식 기간이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졸업을 하고 발령이 난 뒤에는 교육 현장에 있다 보니 주로 교수학습에 관련되는 기능이 담긴 책들과 교과지도나 생활지도와 관련하여 도움이 되는 책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글쓰기나 우리말과 관련하여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책들을 두루 훑어보았고, 발도로프교육 관련, 어린이 글이나 옛이야기, 동화책들이 책꽂이의 한가운데를 메워나갔다.

이와 더불어 천문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뒤로는 별자리, 그리스신화, 우주론 같은 과학 관련 도서들에 빠져 7-8년을 보냈다. 다만 예전에는 서양 과학자들이 쓴 책들을 많이 보았다면 지금은 이문규의 ‘고대 중국인이 바라본 하늘의 세계’, 안상현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같은 동양천문학에 관한 책들을 주로 보고 있다.

이제 나이를 제법 먹다 보니 수필이나 소설, 감상문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거대담론에 팔려 있던 정신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비야가 쓴 각종 체험기, 황대권의 ‘야생초편지’,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 임의진의 ‘종소리’,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들이 그것이다.

요즘은 사실 책을 읽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학교도 바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5살, 7살 아이들이 있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래도 독서는 습관이라고 하니 삶의 틈새를 잘 이용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두 군데의 교사 모임에서도 한 달에 한 권 정도 좋은 책을 선정해서 책을 읽는다. 이번 학기에는 독서교육론 수강을 하며 또 좋은 책들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이래저래 책 읽으며 한 학기를 보내게 될 것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르라고 하면 권정생의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장일순의 ‘좁쌀 한 알’ 정도가 아닐까 싶다.

(200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