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망원경 경통(다카하시 78mm 굴절)에 캐논 20D 카메라를 물려서 수동으로 초점을 잡아가며 조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 중 하나이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됐건만 길을 지나다 뭔가 펄럭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관심 밖의 대상들이었다. 관심이라는 말, 참 중요한 것 같다. '애정'으로 가는 징검다리 같은 단어라고 할까.
6월 22일 오후 5시 30분 경. 밀양 집에서 김해로 내려오는 길에 청도천 둑길을 택했다. 여름에는 새들이 많이 없다지만 혹시나 뭔가 찍을 대상이 있을까 싶어서다. 100m쯤 떨어진 곳에 왜가리 한마리가 보여 얼른 몇 컷 담긴 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작아보였다. 그 다음 발견한 놈이 바로 아래 녀석이다.
거리가 3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카메라 앵글에 가득 차게 들어왔다. 근데 이놈들은 습성이 조심스러워서 내가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도망을 가버린다. 다행히 이 녀석은 차를 세우자 훨훨 날아가더니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앉아주었다.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이렇게 우아하게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포착이다. 남들이 찍기 어려워 하는 것에 도전해서 성공해야 가치가 있는게 아닌가. 물고기가 입에 물려 찰랑찰랑 하는 그 순간, 물고기의 꼬리 끝에서 떨어져 나간 한 두 개의 물방울까지 담기면 얼마나 실감이 나겠는가.
근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 녀석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도 경계를 풀지 않고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은 자꾸 가고, 차 안에 놀던 아이들은 이제 놀기도 지쳤는데 왜 안 가냐며 성화를 부렸다. 그래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초점을 달리하며 수십 컷 담기만 했다.
포기할까 생각하는데 드디어! 드디어 이 녀석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보 위에서 아래로 풀쩍 내려 서더니 물결이 바닥과 부딪혀 포말이 이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 돌려가며 주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무엇을 발견한 듯 고개를 내려 꽂더니 길게 뻗은 주둥이를 물거품 속으로 쑤욱 쑤셔 넣었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뭔가 허연 것이 렌즈 앞을 지나갔다. 헉~ 허연 것이 지나가고 다시 나타난 그 녀석은 이미 먹이를 삼키고 있었다. 그 때 들려온 음산한 목소리.
"사진 찍는교?"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이었다. 하필 그 때 지나가실께 뭐람. 나는 적당히 저기 있는 새 찍는다고 둘러대고 흥분한 마음을 추스렸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로 찾아온 기회는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얼마되지 않아 찾아왔다. 한 10여 분쯤 기다렸을까. 녀석은 아까 먹은 먹이가 부족했던지 다시 두리번 거리며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난 녀석이 서성이는 모습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몇 컷 담으며 결전의 순간을 대비했다. 녀석의 눈은 깜빡이지 않았지만 요리 조리 얼굴을 돌려볼 때 예리함이 느껴졌다.
다시 아까 먹이를 물었던 곳에 다다랐을 때 녀석의 주둥이가 번개같이 포말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녀석이 고개를 들었을 때 제법 큰 물고기 한 마리가 주둥이에 물린 채 몸통을 출렁이고 있는 모습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왔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바로 이거다 싶어 셔터를 꾹 누르는데
"엉?"
카메라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눌러도 또 눌러도 카메라는 그 어떤 신호도 내보내지 않았다. 아뿔싸. 배터리가 다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 배터리 잔량을 확인했을 때 막대기 하나가 남아있어서 오늘까지는 괜찮겠다 싶었으나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이 다 될 줄이야... 하긴 한 시간여 동안 100컷도 넘게 셔터를 눌렀으니...
녀석과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치를 왜가리 한 마리를 앞에 놓고 새삼 느꼈다고 할까. 어떻든 녀석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세심하게 준비하지 않고 대충 덤벼서 뭔가를 얻으려 했던 내 어슬픈 자만심이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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