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생활일기

"난 미국소 먹을끼다!"

늙은어린왕자 2008. 7. 24. 16:57

  방학을 맞아 삼십여 명의 교직원들이 1박 2일 일정으로 강화도 역사유적지와 춘천 남이섬 등지에 연수 겸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저녁을 먹으러 현풍에 있는 원조 곰탕집에 들렀다. 현풍에서 제일 유명한 집이라고 기사가 안내한 집이었는데 가보니 장사를 꽤나 크게 하였다. 손님도 많은 편이었다.

  미국 광우병소 수입 문제로 나라가 들썩이다 보니 마음속으로 '이 집은 어느 나라 소를 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게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원산지 표시는 없었다. 대신 '50년 전통 곰탕집'이라는 광고는 여기저기 많이 붙어있었다. 원조 할머니 사진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교장, 교감, 친목회장과 함께 자리를 함께 했다. 10분 쯤 기다리니 기다렸던 음식이 나왔다. '원조'라서 그런지 보통의 곰탕집에서 나오는 우윳빛 곰탕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가마솥에서 끓여주던 거칠게 보이는 곰탕과 비슷했다. 건더기도 살코기 대신 내장 삶은 것을 크게 썰어서 넣어주었는데 이 역시 우리 아버지가 해주시던 방법과 비슷했다. 기름기는 좀 많았지만 맛은 괜찮았다.

  "앞으로 미국에서 뼈있는 고기가 수입되면 이런 거 마음 놓고 먹겠어요? 걱정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50대 여자 분인 친목회장님이 눈을 동그랗게 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못 먹는다. 나는 앞으로 미국 소 들어오면 사 먹을 거다."

  나 보고 들으라고 하는 말씀인지 목에 다소 힘이 들어갔다.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연세 드신 분들 앞에서 괜한 소리를 했나 싶었다. 다음 말을 참을까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다.

  "용감한 결정이십니다. 다들 피하려고 하던데."

  "서울에 사는 내 친구가 그러던데 미국소고기가 참 맛있단다. 우리나라 한우보다 훨씬 고기질도 좋고 맛도 좋다고 하더라."

  서울에 사는 그 친구가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미국 소고기를 사 먹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미국 소도 좋은 고기가 있고 나쁜 고기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교감선생님이 친목회장님을 거들고 나섰다.

  "광우병 걸리려면 30년이나 있어야 된다 카더라. 지금 먹어봐야 죽을 때까지 안 걸리는 거지 뭐. 그러고 한우도 믿을 거 하나도 못된다. 고기 키우려고 육골분 사료 얼마나 많이 먹이는데."

  가만히 듣자 하니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였다. 소위 보수신문이라고 하는 조중동에서 이런 논리를 들이민다. 여러 가지 반박 논리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복잡해질 것 같아서 참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들은 드셔도 됩니다. 언제 광우병 걸리겠어요? 문제는 질 나쁜 소고기들이 학교나 군대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거지요. 우리 아이들한테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공감한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논쟁이 싫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 뒤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교감 선생님 옆에 있던 교장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드시기만 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미국소를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가 잘 드러나는 대화였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아무리 보수 신문을 보고, 보수적인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난 미국 소 사먹을 거다'고 당당히 외치는 건 어딘지 모르게 볼썽사납다. 반대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그렇게 당당히 말하는 건 진정한 자신의 신념일까 아니면 반대파를 누르기 위한 말재주일까. (2008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