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화요일 오후에 하늘이 파랗게 열렸다.
노래 부르기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다. 지난 4월 공개수업 때 이후 처음이다. 학기 초에는 아이들과 노래를 많이 불러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행사와 빡빡한 교과진도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탓이다. 그 동안 교실 한 구석에서 먼지만 맞고 우두커니 서 있던 기타 보기가 미안했다. 이제 기말고사도 끝났고 십여 일 뒤면 방학이라 마음 편하게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가방에 쌓인 먼지를 털고 기타를 꺼내어보니 다행히 줄에 녹은 슬지 않았다. 하지만 줄을 튕겨보니 퉁퉁거리며 묵은 소리가 냈다. 눅눅한 장마철인데다 오랫동안 손질을 안 한 결과다.
“선생님, 한 곡 뽑지요?”
“줄만 만지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빨리 노래 불러요.”
줄을 고른다고 팅팅 거리고 있으니 아이들이 보챘다.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봐라. 줄을 맞춰야 칠 거 아이가.”
우선 악보를 나눠주고 가사를 읽어보게 했다. 오늘 부를 곡은 ‘너를 아주 좋아하니까’와 ‘우리 반 여름이’ 이렇게 두 곡이다. 노래도 좋지만 마침 이번 주가 ‘친구사랑주간’이어서 가사가 어울려서 골랐다.
‘너를 아주 좋아하니까’는 두 친구가 문답식으로 가사를 주고받으며 부르는 곡이다.
A : 내가 너에게 물어볼게.
B : 뭘?
A : 너는 무슨 색 제일 좋아하니?
B : 나는 너에게 대답해줄게. 나는 ○○색 제일 좋아한단다.
A : ○○ ○○색이 제일 좋다구? 나도 너의 색이 좋아질거야. 왜냐구 누가 내게 물어오면은 나는 너를 아주 좋아하니까.
이 노래를 부를 때 B는 ○○에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말하면 된다. 가사가 정해져 있지 않고 사람에 따라 가사를 달리 넣을 수 있는 곡이어서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역할을 바꾸어서 2절은 좋아하는 꽃을, 3절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답한다. 3절은 두 사람이 함께 불러도 되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되풀이해도 좋다.
‘우리 반 여름이’는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선생님이 쓴 시에 백창우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다.
우리반에 여름이 / 가을에도 여름이
겨울에도 여름이 / 봄이와도 여름이
우리반에 여름이 / 여름내내 여름이
가사에는 ‘여름’이란 이름을 가진 한 아이가 나온다. 좋든 싫든 이름 때문에 친구들 입방아에 오르내렸을 법한 이 아이를 재치 있게 시에 담아 달래고 품어주려 했던 김용택 선생님 마음이 느껴진다. 곡이 워낙 부드러워서 이름이 참 소중하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드는 노래다.
먼저 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분위기를 잡으려고 칠판에 ‘친구의 날 기념 노래 부르기’라는 주제를 써 놓고 설교 아닌 설교도 잠시 했다.
“여름이란 이름 어때요? 참 좋지요? 만약에 이름으로 장난치면 놀림을 받는 사람은 기분이 참 나쁠 것 같아요. 친구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불러봅시다.”
기타에 무선 마이크를 테이프로 붙이고 굳은 손가락을 놀리며 줄을 튕겼다. 노래가 단순해서 한두 번 연습하니 금세 따라 불렀다. 팅팅거리며 무겁던 기타 소리도 고운 아이들 목소리와 어울리면서 살아났다.
함께 몇 번 부른 뒤 앞으로 나와서 부를 사람은 나오라고 했더니 너도 나도 하겠다고 우르르 몰려나와서 예닐곱 명만 부르게 했다. 노래나 율동할 때 서로 나오겠다고 하는 건 우리 반 아이들이 가진 특징이다. 오전에 한 시간이나 나한테 야단을 듣고도 이러는 아이들을 보면 참 티 없이 맑다는 생각이 든다.
‘너를 아주 좋아하니까’ 짝과 역할을 나눠서 했다. 마침 이번 달에는 남-남, 여-여로 짝을 정해서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남-여가 짝이었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거다. 아래층에 조용히 계시는 교장선생님이 깜짝 놀라 뛰어 올라오실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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