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월요일 구름 덮인 하늘
월드컵 내기
출근하여 교실에 들어가니 수민이와 동협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시현이가 내기에 졌는데 딱지 안 줘요.”
정훈이와 찬기도 같은 말을 했다. 시현이는 남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만화책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아이들 말을 듣고 보니 금요일 점심 때 했던 내기가 생각났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결승에서 누가 이길까 하는 내기였다. 시현이는 네덜란드가 이긴다고 했고 동협이는 스페인이 이긴다고 했다. 누가 이기든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한테 딱지 두 장을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두 명이서 한 내기였는데 옆에 있던 수민이와 찬기, 정훈이도 내기에 끼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편에는 시현이 혼자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스페인 편이었다.
“만약에 니가 이기면 여덟 장 받지만 지면 한꺼번에 여덟 장 줘야 되는데 괜찮나?”
시현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넌지시 물어보니 시현이는 아무 거리낌 없이 좋다고 했다. 시현이는 분명히 네덜란드가 이긴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들 말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늘 새벽에 벌어진 결승전에서 1대 0으로 스페인이 이겼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시현이가 딱지를 주는 게 맞다. 시현이에게 물었다.
“시현아, 딱지 안 줄거가?”
“안 가져왔어요. 내일 주려고요.”
만화에 빠져 있는 시현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시현이, 약속 지켜라.”
“오늘 딱지 받아야 해.”
아이들이 거세게 공격했지만 시현이는 관심이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심각한데 시현이는 느긋 그 자체였다.
“그냥 재미로 한 건데 안 받으면 안 되겠나?”
“안돼요. 꼭 받아야 돼요.”
내가 중재를 해봤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이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시현이가 공부시간에 딱지를 만지다가 나한테 뺏긴 적이 있었다. 책상을 뒤져보니 아니나 다를까 스무 장이 나왔다. 그 가운데 열 장을 꺼내 시현이한테 주며 아이들에게 여덟 장 나눠주고 나머지 두 장은 가지라고 했다.
시현이가 딱지를 두 장씩 나눠주자 내기를 걸었던 아이들이 아주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빚을 갚은 시현이도 기분 좋은 지 만화책도 안 보고 딱지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그러고 있더니 시현이가 내게 부탁했다.
“선생님, 남은 딱지 제 거니까 다 주시면 안돼요?”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으니 자기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더니 딱 그 모양이었다.
“안 돼. 남은 건 아직 니 벌이 끝나지 않아서 못 줘.”
이렇게 잘라 말하고 딱지를 다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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