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수요일 맑고 추운 날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말
듣기말하기 시간에 하나의 낱말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뜻을 활용하는 공부를 했다. ‘차례’, ‘높다’가 지닌 여러 가지 뜻을 먼저 살펴본 다음 ‘잡다’가 가진 뜻도 함께 알아보았다.
흔히 손으로 물건을 움켜쥔다는 뜻으로 쓰는 ‘잡다’가 가진 여러 가지 뜻을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찾아낼까 궁금했다. 생각나는 대로 발표를 시켜보았다. ‘차례’나 ‘높다’의 여러 가지 뜻을 찾아낼 때 재미를 들였는지 손이 쑥쑥 올라갔다. 용은이와 수인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친구 팔을 잡다.”
“연필을 잡다.”
예상대로 가장 흔히 쓰는 뜻을 먼저 말했다. 이제 다른 뜻을 말해보도록 했다.
“총으로 나쁜 동물을 잡다.”
“인질범을 잡다.”
수지는 ‘짐승을 죽이다’는 뜻을, 정훈이는 ‘체포하다’는 뜻을 예로 들었다. 발표가 이어졌다.
“아빠가 해외여행 기회를 잡다.”
“감을 잡았다.”
“권력을 잡다.”
일이나 기회를 얻는다는 뜻을 예로 든 윤재와 실마리를 잡는다는 뜻을 예로 든 규리, 권한을 차지한다는 뜻을 예로 든 미경이도 잘 했다. 분위기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동협이가 아주 좋은 의견이 있다고 해서 시켰더니 마치 노래를 부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떠나가는 여인을 잡다.”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마치 TV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행동해서 더욱 웃겼다. 동협이는 언제나 재미있는 생각으로 남을 웃겨준다.
“근데 가는 사람을 손으로 잡아 세웠다는 말인지 아니면 마음을 잡았다는 뜻인지 모르겠는 걸?”
동협이는 그것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 민서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 동생이 남자친구 마음을 사로잡다.”
동협이 의견에서 힌트를 얻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동생이 벌써?’라는 뜻으로 “우~” 하며 야유를 보냈다.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성진이가 새로운 의견을 내 놓았다.
“특종을 잡다.”
이것은 ‘특정한 신문이나 방송에서만 얻은 중요한 기사를 찾아내다’는 뜻으로 초등학교 3학년이 쉽게 떠올리기 힘든 건데도 잘 생각해냈다.
나올만한 의견이 다 나왔는지 발표가 뜸하더니 민석이가 마지막으로 의견을 냈다.
“땡 잡았다.”
이건 화투 노름에서 높은 패를 잡았을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뜻 밖에 행운이 왔을 때 흔히 쓰는 말이므로 민석이도 예를 잘 말했다.
‘잡다’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가만히 따져보니 참 뜻이 많구나 싶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 말을 쓰는 경우가 스물여덟 가지나 됐다. 그 가운데 아이들이 열 가지나 찾아냈다. 짧은 시간에 정말 대단한 공부를 했다. 덕분에 나도 재미있었다.
[덧붙임] 아이들이 놓친 뜻 가운데 흔히 쓰는 예
○ 택시를 잡다.
○ 카메라로 아기가 웃는 모습을 잡다.
○ 트집을 잡다.
○ 몸의 균형을 잡다.
○ 그 아이는 피아노 음을 잘 잡는다.
○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잡다.
○ 산으로 번지는 불길을 잡다.
○ 결혼할 날을 잡다.
○ 다리미로 바지에 주름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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