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화요일 맑은 가을 하늘, 중부지방에는 벌써 첫눈 소식이 들린다.
겪은 일 쓰기 공부
매주 화요일 아침은 겪은 일을 쓰는 시간이다. 오늘도 아이들 모두 끙끙거리며 열심히 글쓰기를 했다. 9월에 긴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싫은 표정이 많더니 요즘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다.
아이들이 써놓은 글을 살펴보니 이제 제법 좋은 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본 것, 들은 것을 또렷이 살려 썼거나 생각을 솔직하게 나타낸 글에는 별표를 해주고 특활 시간에 모두 읽어주었다. 또 인상에 남는 글을 골라보기도 했다.
먼저 정훈이 글이다. 정훈이는 요즘 공책도 잘 잃어버리지 않고 글도 열심히 잘 쓴다.
못된 형
강정훈
오늘 문구점에서 카드를 사고 나왔는데 민우 형이 천 원을 내 놓으라고 했다. 나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민우 형이 내일 안 들고 오면 죽는다고 했다. 내가
“왜 돈을 내 놓아야 돼?”
라고 했는데 민우형은
“뒤질래?”
라고 했다.
나는 돈을 주기 싫은데 형아는 계속 달라 한다. 형이 나를 패기 전에 내가 먼저 형아를 패고 싶다. (11월 9일)
정훈이가 못된 형을 만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점이 잘 드러난 글이다. 당장이라도 민우라는 아이를 잡아서 혼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문구점에서 있었던 일을 대화를 넣어서 잘 썼고 생각도 솔직하게 잘 써서 좋은 글이 되었다.
언니는 좋겠다!
정수인
아침에 언니가 아파서 엄마가 조금 늦게 깨웠다. 그리고 씻고 나서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언니가 콧물만 나고 목만 아픈데 엄마는
“우리 교윤이 아팠어요? 엄마가 약 줄게요. 우리 교윤이.”
라고 했다.
나도 목이 일요일부터 너무 아팠는데 엄마는 신경도 안 쓰고 언니만 좋아해줘서 샘이 났다. 나도 목이 너무 아파 물도 안 넘어가고 밥도 안 넘어가는데 엄마는 늦었다고 자꾸 먹으라고 했다. 언니는 안 먹는다 해도 엄마는
“교윤아, 두 숟가락만 먹어라.”
라고 말했다.
엄마는 언니가 아프면 기분이 좋은가? 아프다고 해도 너무 심하다. 나도 아프면 좋겠다. (11월 2일)
수인이는 언니를 대하는 엄마의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잘 살려 썼다. 아마 엄마는 수인이 보다 더 아파보이는 교윤이를 먼저 챙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인이 눈에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샘이 났던 것 같다. 수인이 마음이 아주 잘 드러난 글이다.
아빠 감시
이용은
어제 아빠, 아빠 친구와 외식을 했다. 엄마도 있었고 엄마 친구도 있었다. 엄마는 엄마 친구와 수다를 떨고 아빠는 아빠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나는 솔직히 아빠를 감시하고 있었다. 아빠가 술을 많이 먹는 지 담배를 많이 피우는 지 말이다. 그래서 내가 아빠 보고
“아빠, 담배 술 먹는 지 안 먹는 지 본다.”
라고 말했다.
아빠는 내 말을 듣고
“응, 그래.”
라고 했는데도 담배, 술 둘 다 먹었다. 얄미웠다. 나는 아빠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11월 9일)
아빠를 생각하는 용은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아빠가 술과 담배를 드실 때 한 말이나 했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 정도로도 좋은 글이다.
정훈이 칼
조민석
며칠 전에 정훈이가 도서실 선생님에게 칼을 빼앗겼다. 3학년 1반에서 정훈이가 칼을 들고 설쳤다고 했다. 그런데 정훈이 말로는 3학년 1반에서 칼을 떨어뜨려 주웠는데 칼날이 나온 거라고 했다. 3학년 1반 여자 애들이 항의하러 오자 정훈이는 울었다. 결국은 우리 반 여자 애가 3학년 1반 애들을 내보냈다. 왜 우냐고 물어보니 정훈이가 울면서
“난 아무 잘못도 없다.”
고 했다. 나는 정훈이를 달래주었다.
결국 아까운 정훈이 칼만 빼앗겼다. 정훈이가 너무 불쌍했다.
민석이 글을 읽어보면 정훈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우는 정훈이를 달래는 민석이 마음이 참 곱게 느껴진다. 좋은 글은 이처럼 억울하거나 약한 친구를 돕는 마음에서 나온다.
이 밖에도 좋은 글이 많이 있지만 몇 편만 더 소개한다. 있었던 일을 또렷이 되살려 쓴 글, 본 것이나 들은 것을 생생하게 나타낸 글, 어떤 일을 겪으면서 했던 생각을 잘 잡아 쓴 글들이다.
방과 후 수업
박규리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학교에 안 가고 싶었다. 왜냐면 방과후를 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매일 이런 생각이 들지만 화요일은 더더욱 그렇다. 제일 늦게 마치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도 많고 그래서 선생님께 혼나고 이런 하루가 싫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나 방과 후 안하면 안 돼?”
라고 물었다.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라고 했다.
“엄마는 영어랑 수학 중에서 뭐가 나아?”
“음. 어려운 걸. 갑자기 왜?”
“영어라고 하면 영어 방과 후를 안 가고 수학하면 수학 방과 후를 안 할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학교 갈 준비해!”
매일 엄마랑 이런다. 엄마는 방과 후를 안 해주실 생각이 없나보다. 엄마랑 영혼을 바꿔서 엄마에게 야단치고 싶다. (11월 2일)
넛할머니의 교통사고
강민서
목요일에 넛할머니가 신호등을 건너다가 버스와 부딪혔다. 곧 넛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넛할머니는 신호가 와서 가고 버스는 노란불이라서 가속페달을 밟아서 사고가 났다고 한다.
혹시 넛할머니가 진짜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나도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11월 9일)
*넛할머니 = 아버지의 외숙모를 가리키는 말
(이번에 민서 글을 보며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알아냈습니다.)
체육하기 싫은 날
권구완
오늘 2교시에 체육이었다. 그런데 체육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리 축구를 한다고 해도 하기 싫었다. 왜냐하면 아침에 축구한다고 힘도 빠졌고 오늘은 춥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축구를 해도 힘들지 않았는데 가을이 되니까 낮도 짧고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힘을 쓰면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체육을 하기 싫고 겪은 일 쓰기를 더 자세히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글을 읽고 체육을 빼줄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육을 하기 싫다. (11월 2일)
힘든 축구
이수민
아침에 축구를 했다. 1반 애들이 없어서 골대에서 축구를 했다. 동협이가 골키퍼를 했다. 그런데 1반 애들이 와서 같이 하자고 해서 했다.
하고 있었는데 5학년 형들이 왔다. 공을 안 뺐는걸 보고 같이 했다. 나중에 4학년 형들도 왔다. 너무 많이 와서 복잡했다.
해도 안 돼서 동협이가 골대 옆에서 놀자고 했는데 편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축구를 할 수 있었는데 5학년 형들 공이 자꾸 왔다. 짜증이 났다. 그래서 옆에서 놀다가 골대가 비어서 빈 데서 했다.
축구하기가 뭐가 이래 힘들까. 4학년 형, 5학년 형들이 반대편 골대에서 놀았으면 좋겠다. 제발 이루어지길 비나이다. (11월 9일)
'삶을가꾸는글쓰기 > 2010 교실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11일 - 빼빼로데이를 대신할 날은? (0) | 2010.11.12 |
---|---|
11월 10일 - 착각 (0) | 2010.11.10 |
11월 8일 - 밥 보다 놀이 (0) | 2010.11.09 |
11월 6일 - 집으로 가는 노래 (0) | 2010.11.06 |
11월 5일 - 모기이야기 (0) | 2010.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