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목요일 맑음
희지 좋아하죠?
점심 먹고 교실로 올라오니 방과 후 수업을 기다리며 노는 아이들 옆에서 희지 혼자 손걸레로 열심히 책장을 닦고 있었다. 말없이 한 칸 한 칸 꼼꼼히 닦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고마운 마음이 우러났다.
“희지야, 너 정말 청소 잘하는구나.”
이 말에 희지는 살짝 웃음만 보일 뿐 별 반응이 없는데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잔뜩 샘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래서 들으라고 한 마디 했다.
“너희들은 뭐하노? 좀 도와줄 것이지!”
내가 버럭 소리를 내자 아이들도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우리들도 청소 다 했! 다! 구! 요!”
“맡은 거 다 하면 놀아도 된다면서요!”
벌집을 잘못 건드려도 벌들이 이 보다 더 왕왕거리며 달려들었을까?
“아, 알았다. 알았다. 청소 다 했으면 됐다. 난 그냥 시간 남으면 도와주라는 말이지 너희들 청소 안했다는 말은 아냐.”
사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씩씩거렸다. 우리가 이러든 말든 희지는 여전히 걸레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희지 청소가 끝나고 그 때까지도 남아 있던 미경이와 현정이, 희지 이렇게 셋을 불러서 일을 한 가지 부탁했다. 진단평가 답지에 구멍을 내는 일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하고 있는데 현정이가 갑자기 이러는 것이었다.
“선생님, 희지 좋아하죠?”
웬 뜬금없는 오해일까? 옆에서는 미경이가 ‘그래, 그래.’하며 거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희지를 좋아하다니?”
“선생님은 우리가 물어보면 딱딱하게 대답하고 희지가 물어보면 ‘어, 그래, 희지야.’ 이렇게 다정하게 하잖아요.”
“…….”
순간 말문이 팍 막혔다. 너무 엉뚱한 일을 만나면 말문이 막히는 법. 아까 청소 때 일로 아직 샘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
“그럴 리가 있나. 오해야.”
“오해 아니에요. 희지야 니가 선생님한테 질문해봐.”
“…….”
증거를 잡으려고 현정이가 부추겼지만 희지는 살짝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휴~ 칭찬 한 번 잘못 했다가 큰 일 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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