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토요일 구름이 기웃기웃하는 날
우연의 일치
어젯밤에 하늘이 어찌나 맑던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백운대고분으로 나가 90분 동안 별 일주사진을 찍었다. 깨끗한 하늘과 운치 있는 백운대 고분 풍경이 어우러져 멋진 일주사진을 하나 만들었다.
첫 시간 공부하기 전에 왠지 이 사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게 있으면 자랑하고픈 성급한 성미를 참지 못하는 게 내 단점이다.
"이 사진 한번 보세요. 어젯밤에 찍은 별 사진입니다."
아이들의 눈이 모두 텔레비전으로 쏠렸다. 몇몇 아이들은 “우와!” 하며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에이, 진짜 선생님이 찍은 거예요?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선생님이 찍은 거 맞다."
지상이가 의심하는 투로 말하자 미경이가 반박했다. 지상이는 지난해에 우리 반이 아니었고 미경이는 우리 반이었다. 별 사진이 나올 때마다 본 미경이는 의심 없이 내가 찍은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지상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저런 사진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데 복사한 거 아니에요?"
지상이는 여전히 못 믿겠다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내가 찍은 거 맞아요. 사람 말을 못 믿는거야?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가 어딜까? 맞춰보세요."
여러 대답이 나왔는데 한 명도 답을 맞추지 못했다.
"그럼 가르쳐 줄게요. 여긴 백운대 고분입니다. 고분은 옛날 무덤이라는 뜻이죠."
무덤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런데 가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진짜 무덤 맞아요?"
"당연히 진짜지요. 가야 출신이었던 사람 지금부터 천오백 년 가까이 되었겠죠."
이어서 그 무덤이 생긴 유래를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런데 내가 사진 찍은 게 어젯밤 자정 무렵이었죠. 카메라를 설치하려고 무덤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은 없는데 소리는 들리는 거예요.”
귀신 이야기라도 한 토막 나오는가 싶어서 아이들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얼른 카메라를 설치하고 내려왔는데 그 땐 아무 소리가 안 들렸죠. 근데 다시 올라가서 무덤으로 다가가면 또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남자 목소리도 나도 여자 목소리도 나고. 예전에는 중요한 사람이 죽으면 돌봐주던 사람도 같이 묻었다던데 그래서 그랬을까요?”
“순장이라고 하던데요.”
“그래, 맞아요. 무덤이 우리 교실 크기만큼 되니까 여러 사람 묻혔겠죠?”
“서른 명은 들어갈 거 같은데요.”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수업 시작 시간이 지나있었다.
“하여튼 어젯밤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차 안 있다가 살짝 올려다 보고 또 그렇게 하며 겨우 사진을 찍었지요. 어, 공부 시간 됐네요. 자, 그럼 책 펴 봅시다.”
이야기가 여기서 그치자 아이들이 아쉬움의 한숨 소리를 냈다.
“그렇게 아쉬우면 다음에 같이 한 번 가볼까요? 밤에 가면 무서울 텐데?”
“예, 같이 가요. 갈 수 있어요.”
“저도 가고 싶어요.”
“저도요.”
몇몇 아이가 손을 들기 시작하자 한두 명 빼놓고 모두 손을 들었다. 이렇게 약속하고 나니 아쉬움이 사그라졌는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듣기말하기쓰기>책 오늘 배울 곳을 폈는데 ‘이야기를 듣고,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한 내 생각이나 느낌 말하기’ 공부가 나왔다. 들을 이야기는 ‘이야기 귀신’이었다. 순간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방금 한 무덤 이야기와 쏙 빼닮은 주제가 나와서다.
사실 어제 바쁘다는 핑계로 교과서를 미리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늘 무엇을 배울지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업에 들어왔는데 우연찮게 내가 한 이야기가 도입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부지런히 사진 찍고 또 아이들한테 자랑하다 보니 이런 횡재도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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