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6월 16일 - 공개수업

늙은어린왕자 2011. 6. 16. 19:25

6월 16일 목요일 구름 많음
공개수업

 

  오늘 공개수업을 앞두고 어제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공개수업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한테 알릴 때였다.
  “내일 셋째 시간에 선생님들을 모시고 우리 반 공개수업 합니다. 주제는 수학 6단원 가분수와 대분수입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웅성웅성 했다.
  “그거 아까 조대욱 선생님이 수업 하셨는데요?”
  “뭐어?”
  아이들 말로는 내가 다른 반 수업을 보러 간 사이 5학년 3반 선생님이 우리 반에 수업하러 오셨다가 진도를 나갔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르고 하셨지만 수업 준비를 하던 나로서는 김이 쏙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학원 같은 곳에서 미리 배운 아이들이 많은데 수업 시간에서까지 다루었다니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수업을 앞두고 아이들한테 이상한(?) 부탁을 해야 했다.
  “오늘 수업은 여러분들이 거의 아는 내용일 텐데 그렇다고 아는 체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들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참여하는 지를 보러 오시는 거니까요.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시간이 되자 교장선생님, 전담선생님, 옆 반 선생님들이 교실에 들어왔다. 살짝 긴장은 되었지만 학부모 공개수업 때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별다른 준비를 시키지 않은 탓인지 아이들도 평소 때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수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암호풀기도 하고 종이 피자로 분수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거의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여러 가지 자료로 수업하다보니 아이들도 즐겁게 참여하였다.
  그런데 수업이 중반으로 넘어갈 즈음 선생님들이 하나 둘 교실을 빠져나가더니 결국 모두 가고 교실에는 다시 우리들만 남았다. 몇몇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선생님들이 다 가셨네요?”
  “그렇네?”  “어떡해요?”
  “뭘 어떡해? 그냥 우리들끼리 열심히 수업하면 되지. 이제부터는 수업을 즐겨야지.”
  이번에는 아이들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긴 해도 선생님들이 계셨을 때는 눈치도 보고 살짝 긴장도 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가시고 난 뒤 오히려 우리 반 수업은 불이 붙었다. 가분수와 대분수에 이름붙이기를 했더니 기막힌 생각들이 많이 나왔다. 가분수에는 ‘가짜분수’, ‘머리큰분수’, ‘불량분수’, ‘비정상분수’, ‘비(非)분수’ 같은 별명을, 대분수에는 ‘삼총사분수’, ‘삼각분수’, ‘늙은분수’, ‘자연분수’, ‘가족분수’, ‘외톨이분수’, ‘대왕분수’, ‘큰분수’처럼 재미있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세 번째 활동이었던 암호 풀기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암호를 풀고 답(정답은 ‘이정호’이다)까지 먼저 맞힌 아이들은 종합장이나 사탕 선물을 받아가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말했다.
  “날마다 이렇게 수업해요.”
  “맞아요. 재미있어요.” 
  속에서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너무 한다 너무해. 이 수업 몇 시간 동안 준비했는지 아니? 며칠 전부터 했고 시간으로 따지면 자그마치 네 시간 이상 했어. 날마다 이런 수업 준비하면 날마다 네 시간씩 준비해야 하는데 그럼 나는 언제 밥 먹고 언제 오줌 누고 언제 똥 누고 언제 친구 만나냐!”
  아이들이 웃었다. 그리고 다시 애원했다.
  “그럼 사흘만!”
  “사흘도 어려워.”
  “그럼 일주일에 한 번만!”
  “흠, 그건 생각해봐야겠네.”
  아이들 말대로 날마다 이런 수업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하는 건 교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참 복잡하다. 그래도 이번 공개수업을 계기로 다짐해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만이라도 즐거운 수업을 해야겠다는 것을! (주먹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