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휴대폰
9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올 해는 유난히 별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게다가 일어나는 일마다 교직에 들어서고는 처음 겪는 일들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숙제 안해온 남학생 몇몇이 야단 맞았다고 쉬는 시간에 상점에 가서 담배를 사와 화장실에서 몰래 피운 일, 아침 7시에 학교 갔다는 아이들이 등교를 하지 않고 두 시간 동안이나 PC방에서 게임한다고 지각한 일, 남학생 8명이 점심 급식을 하지 않고 아예 책가방 싸들고 PC방으로 직행한 일, 사소한 문제로 싸우는 두 아이를 힘센 아이들이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겨 그 중 한 아이를 병원으로 갈만큼 두들겨 패게한 일…
물론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이런 일들이 늘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예년과는 달리 올들어 잇따라 겪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난 7월 3일에는 더욱 놀라운 일을 겪었다.
수업을 마치고 직원회의에 갔다오니 교실 책상위에 있던 휴대폰이 없어진 것이다. 가져갈까 하다가 회의 도중에 울릴까봐 놓아두고 간 것이다.
혹시 나도 모르게 다른 곳에 두었나 싶어 책상 아래, 서랍, 바닥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휴대폰은 나오지 않았다. 어디 떨어져 있으면 울릴거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 전화를 받는게 아닌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
상대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잠시 뒤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또 받았다.
“누구세요? 말을 하세요.”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고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엷게 흘러나왔다.
온데간데 없이 잃어버린 것보다는 누군가 가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어짜피 남의 휴대폰은 가져가봐야 쓸 수 없는 물건이니까 나중에라도 돌려주겠지. 퇴근 무렵 통신회사에 전화를 걸어 분실 신고를 하고 발신 중지 조치를 일단 해두었다.
누가 가져갔을까.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선 어른은 아닌데. 그렇다면 우리반 아이들일까. 평소에도 아이들은 내 휴대폰으로 집에 전화를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들고 갔다는 점이 이상했다. 아이들은 여태껏 한 번도 휴대폰으로 장난을 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내 주위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을거라는 의심은 지울 수 없었다.
이튿날 수업 시작 전에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모두 놀라워하는 모습들이었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무언가 짚히는 게 있으면 조잘조잘 말이 나왔을텐데 말이다. 몇몇 장난끼 넘치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신들도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저 녀석들이 연기를 하는 건지도 몰라. 요즘 학급 생활 문제로 야단 맞은 것에 대한 분풀이로 한 이틀 날 골려줄려고 단단히 작정을 한 게 아닐까?’
여전히 심증은 반 아이들에게 있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선생님 휴대폰을 찾습니다. 휴대폰이 없으니 중요한 연락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돌려주세요.』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면 은근슬쩍 갖다 놓기를 바라며 먼저 교실 문에 호소문을 붙였다. 그리고 혹시라도 우리 교실이 아닌 다른 곳에 갖다 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내 방송으로도 알렸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흘째가 되어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답답했다. 늘 들고 다니면서 연락을 주고 받던, 내게 세상으로 통하는 창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벗을 잃어버린 슬픔이라고나 할까. 나의 일상생활에 구멍이 생긴 듯 허전하였다.
무엇보다 그 안에 저장해놓은 수많은 전화번호가 걱정되었다. 그 중 몇몇은 수첩에 따로 적어놓긴 했지만, 결국 휴대폰을 잃는다면 다른 번호들은 찾을 길이 없지않은가.
가져간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점점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답답해하고 걱정하고 있는줄이나 알까. 그래도 갖다 주기만 한다면 모든 걸 용서하리라는 마음이 앞섰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니까.
반 아이들에 대한 심증도 엷어져갔다. 아이들이 장난을 한 것이라면 벌써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휴대폰의 행방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없었다.
나흘째가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자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증은 외부인의 짓으로 굳고 있었다. 수업을 하다 말고 아이들에게 ‘수사계획’을 설명했다.
“휴대폰은 통화를 하게 되면 무조건 기록이 남게 된다. 목소리까지 녹음이 다 된다. 오늘 선생님이 부산으로 가서 통화기록을 뽑아오면 범인이 잡힐 것이다. 너희들도 기대해라.”
“선생님 멋져요! 꼭 잡으세요.”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통신회사에 연락을 하니 다행히 잃어버린 시각부터 발신중지를 요청한 시각까지 몇 통화가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곧장 부산 하단에 있는 지점으로 갔다. 신분증을 들고 본인이 가야만 통화내역 열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통화내역을 받아보니 가슴이 떨렸다. 017, 019, 01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들이 6건이나 나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걸다가 만 것이었고 딱 하나가 3분 동안 통화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학교로 돌아오자 마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번호를 눌렀다. 잠시 뒤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앳된 여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서울에 사는 여중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김해쪽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잡아 떼며 잃어버린 휴대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였다.
“분명히 이 번호로 통화를 했는데! 그렇다면 할 수 없이 경찰에 연락해서 음성기록을 알아봐야겠어.”
은근히 ‘협박’을 하게 되자 그 여학생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생각하는 시간을 주기를 두 번, 한참 지나서야 여학생은 전화를 건 아이와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났고 김해 어방동에 사는 박아무개군이라고 전해주었다.
“뭐, 박아무개?”
나는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박 아무개군이라면 3년 전의 졸업생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 우리반인 박아무개양의 오빠이다.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즉시 옆반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앨범을 뒤져 박아무개군이 있나 확인을 해보니 있다는거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가르쳐준 전화번호도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박군은 집에 있었다. 곧장 그 애가 사는 아파트로 갔다. 박군은 처음에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떼다가 통화기록을 보고서야 6통화 중 네 건을 자신이 걸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나머지 통화 두 건의 주인공도 알려 주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애가 3년 전 우리반에서 공부했던 제자라는 사실이다.
박군은 그러나 시종일관 길가다가 아파트 나무의자에 있던 휴대폰을 주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몇 통화를 하다가 더 이상 전화가 안 걸리자 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했다. 나중에 던져버렸다는 곳을 20여 분간 뒤졌지만 조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김군에게 전화를 했더니 말이 달랐다. 김군은 자신과 박군 등 4명이 학교에 갔고 자신이 교문 밖에 서 있는 사이 박군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들어가 휴대폰을 훔쳐왔다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김군의 말로 미루어볼 때 누군가가 직접 교실에 들어와서 가져간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무엇보다 속상했던 것은 누가 가져갔던 간에 훔친 옛 담임선생님의 휴대폰으로 제자가 어떻게 능청스럽게 전화를 걸 수 있느냐는 것이다. 휴대폰 액정화면에는 ‘어방초등 이정호’라는 글귀가 선명히 있었다.
김군에게 물었다.
“그 휴대폰 앞에 있는 내 이름을 못봤나?”
“아뇨. 처음에는 못봤고 나중에 보니까 선생님 이름이 있어서 갖다 줄려고 했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교실에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이 말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오히려 자기 어머니한테 휴대폰을 주웠다고 이야기까지 했다는 거다.
김군은 3년 전만 해도 조용하고 성실하며 아주 착한 아이였다. 덩치가 작아 앞에 앉았는데 볼 때마다 귀엽다고 머리를 툭 치며 장난을 걸곤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좋은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런 김군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게다가 이 사실을 알게된 두 아이 부모님들의 말도 답답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처음에 내 말을 듣고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이야기 하더니 잠시 뒤 김군의 말을 듣고는 오히려
“우리 아이는 밖에 그냥 서 있었답니다.”
하며 김군을 두둔하고 나섰다.
박군의 아버지는 사실을 밝혀보자는 내 말에 되레 화부터 냈다.
“나는 모르오. 아이가 잘못했으니 경찰서에 연락해서 처넣어뿌소.”
물론 이 말은 자신의 아들이 선생님의 휴대폰이나 훔치러 다니는 못난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홧김에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답답한 노릇이었다.
닷새째 되는 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고민하는 도중 순경을 하는 고향 친구가 생각났다. 더욱이 그 친구가 근무하는 파출소가 우리 관할이었다. 곧장 전화를 걸었다.
“○○가?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교실에서 내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알고 보니 옛날 내 제자가 범인인기라. 그런데 이 녀석들이 거짓말을 하고 부모님들도 별로 해결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 같은데 니가 일단 조사만 해주면 고맙겠다. 처벌보다는 이 친구들 정신을 한 번 차리게 해야할 것 같아.”
친구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리고 약 3시간 뒤에 연락이 왔다.
“두 아이를 불러서 조사를 다 해놓았다. 순순히 이야기하더구만. 그리고 부모님도 불렀으니까 니가 이리 좀 와라.”
부모님까지 부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것보다 아이들이 모든 사실을 말했다는 게 기뻤다.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아이들 앞에는 지장이 찍힌 진술서가 놓여있었다.
진술서 내용에는 모두 4명이 학교에 갔고 그 중 김군과 박군이 교실로 올라가 책상위에 있는 휴대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제자인 김군이 먼저 휴대폰에 손을 댔다는 것이었다. 가져온 동기는 ‘그냥 책상 위에 있어서’였다.
잠시 뒤 두 아이의 부모님이 왔다. 예상과는 달리 김군은 아버지가 왔고 박군은 어머니가 왔다. 엉겹결에 인사를 했지만 파출소 분위기를 숙연하게 할 만큼 어색한 만남이었다. 한 사람은 지금 학부모이고 또 한 사람은 3년 전 학부모이다. 그들은 나를 알아보았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 잘못 키운 죄로 이렇게 파출소에서 뵙게 되었네예. 모든 책임을 우리가 질테니 아이들을 용서해주십시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파출소 경내를 울렸다.
“그래야지요. 그리고 이번 일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자극이 되고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신경을 써주십시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결국 파출소장님의 교통정리로 휴대폰은 부모님과 같이 가서 즉시 구입하는 것으로 배상받고, 아이들은 부모님이 책임 지고 지도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며 닷새를 끌었던 ‘휴대폰 도난 사건’은 끝이 났다.
파출소 문을 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부디 이 사건이 상처가 아니라 내일을 위한 적절한 자극이 되기를 빌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중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도 드렸다.
그러나 이 일로 내 마음 속에는 제법 큰 파문이 생겼다. 이 일에 대해 과연 내가 대처한 방법이 옳았는지, 또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교육적인지 아직도 혼란스럽고 의문스럽다.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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