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옥수수처럼 자라자

늙은어린왕자 2014. 3. 29. 22:59

옥수수처럼 자라자

 

   6학년 실과 수업 시간. 실습 없이 이론만으로 공부해서 지루했던 벼농사 단원이 끝나고, 옥수수 가꾸기 단원을 맞았다. 옥수수는 화단에다 꼭 심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늘 안타까워 하는 것이지만 실습을 할 조그만 텃밭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론 시간에 옥수수를 기를 때의 특성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 옥수수를 기를 때 특성
   1. 자라는 기간이 비교적 짧다.
   2. 가뭄에도 잘 견딘다.
   3. 땅을 별로 가리지 않는다.
   4. 재배하기가 비교적 쉽다.

 

   칠판에 위의 내용을 쭉 써 놓고 아이들더러
   “너거들이 옥수수라면 몇 점 되겠노?”
하고 물으니 모두들 무슨 말이냐는 듯 두리번거린다.
   “너거들 자라는 거와 옥수수 자라는 걸 비교해 봐. 하나에 25점 잡으면 되겠네.”
   그제서야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인다. 지난 주 벼 가꾸기 수업을 할 때, 벼와 보리를 기를 때의 차이점을 예로 들면서 보리같이 건강하고 힘있게 자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 모양이다.
   100점부터 차례로 점수를 부르니 골고루 손을 든다. 제일 당당한 건 100점짜리다. 모두가 좀 짓궂은 남자아이들이다.
   “너거들이 정말 어려움도 잘 견디고 까다롭지 않게 잘 자라고 있나?”
   “예, 얼마나 잘 자란다고요.”
   “우리 엄만 저한테 신경 안써도 돼요.”
   모두들 대답들이 시원하다.
   0점짜리 아이들도 몇 명 됐는데 힘이 없다는 아이도 있고, 편식을 심하게 한다는 아이도 있다. 부모님 말을 잘 안듣는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그래도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것을 보니 꽤 괜찮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옥수수는 우리가 알아본 대로 질질 끌면서 자라지 않고, 가뭄같은 어려움도 잘 견딜 뿐 아니라 구차하게 땅을 별로 가리지도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재배하기도 쉽고 말야. 너거들이 바로 이렇게 자라야 우리나라 미래가 밝을 텐데 지금 너거들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너거들을 너무 가두어서 키우기 때문에 문제다. 무엇이든 해 보면서 어려운 것이나 쉬운 것이나 경험을 하면서 자라게 해야 하는데, 하지 마라, 가지마라, 먹지 마라, 입지 마라, 보지 마라,마라,마라… 오로지 하라는 건 공부해라. 그러니 그런 약한 몸과 마음을 갖고 무엇을 하겠노. 그래도 너거들이 자신의 처지를 잘 아니까 스스로 잘 커 나가도록 하자.”
   “옛!”
   대답이 우렁차다. 잠깐 동안의 설교를 했는데 아이들의 자세가 퍽 진지했다. 정말 이 아이들 모두가 보리처럼 싱싱하고 옥수수처럼 강하게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1996.5.16)

'삶을가꾸는글쓰기 > 교육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윤이  (0) 2014.03.29
시험을 앞두고  (0) 2014.03.29
잃어버린 휴대폰  (0) 2014.03.29
탱자나무에 얽힌 추억  (0) 2014.03.29
고비마다 곁에 계셨던 '멘토' 이오덕 선생님  (0) 201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