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연필 깎기 서비스
국어 시간에 설명하는 글쓰기를 시켜놓고 자리를 둘러보니 연필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니, 연필은 있는데 대부분 심이 부러져서 못 쓰고 있다. 어떤 아이는 필통에 연필이 대여섯 자루나 있는데도 모두 심이 부러져서 쓸 수 없다고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내 책상이나 잃어버린 물건 상자에는 바닥에서 주워놓은 연필을 칼로 깎아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쓰도록 한다. 그런데 한 열흘 넘게 깎지 않았더니 상자 안에도 쓸만한 연필이 하나도 없다. 스무 개 남짓 들어 있는 연필이 모두 심이 부러져 있다.
글 쓰는 일 보다 더 급한 일이 연필 깎는 일이다 싶어 교실 뒤에 의자와 쓰레기통을 갔다 놓고 아이들한테 <연필깎이 서비스> 왔다고 알리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마치 엿 바꿔 먹으려고 고철 들고 줄지어 서 있던 예전 풍경과 비슷하다고 할까.
한 자루 가져온 아이도 있고 서너 자루를 한꺼번에 들고 온 아이들도 있다. 준민이와 세은이는 처음에는 한 자루만 가져오더니 조금 있으니 온 가방을 뒤져 다섯 자루씩이나 가져왔다. 나연이는 6자루, 희은이는 무려 7자루나 가져오기도 했다.
연필 깎는 일은 손쉽다. 나무 질이 좋으면 대략 10초 안에 한 자루 깎는데, 나무 결이 안 좋은 것은 그 보다 조금 더 걸린다. 어쨌든 연필깎이만 쓰는 아이들에게는 칼질이 신기했던지 감탄을 연발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눌러 쓰니까 심이 부러지지 않게 짧게 깎아달라는 아이도 있고 길게 깎아야 보기 좋다며 칼질을 시작하는 지점을 알려주는 아이도 있다. 언제부터 연필을 깎았냐며 궁금해하는 아이도 있고 어떻게 하면 잘 깎을 수 있냐며 정보를 캐내는 아이도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깎다 보니 내 손가락은 시커멓게 변해도 일은 참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깎는 동안에 성웅이와 경수, 경호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연필 깎아줘서 고맙다며 등 두드려주기로 보답도 하고, 준하는 4자루 서비스 받은 게 만족스러웠던지 사진작가로 변신하여 연필깎기 장면을 사진기로 담아주기도 했다.
일 끝내고 대략 계산해보니 깎은 연필이 60여 자루 정도 된다. 아이들이 가져온 연필이 40여 자루, 잃어버린 물건상자에 있던 연필이 21자루다. 교실에 연필깎이가 있으면 이런 수고도 필요없고 아이들도 필요할 때 편하게 연필을 깎을 수 있겠지만 굳이 연필깎이가 없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서비스를 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일 참 재미있다!)
'삶을가꾸는글쓰기 > 2014 교실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26일 - 설명하는 글쓰기(2) (0) | 2014.09.23 |
---|---|
5월 26일 - 설명하는 글쓰기(1) (0) | 2014.09.23 |
5월 20일 - 설명하는 글쓰기(식구) (0) | 2014.09.23 |
5월 8일 - 어버이날 비밀요원 (0) | 2014.09.23 |
4월 16일 - 지혜는 왜 운이 없었을까? (0) | 201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