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풍경]
빨대-가을열매 놀이
해마다 봄이 무르익을 때면 보릿대에 힘이 오르고 까마중도 따라 알이 꽉꽉 차서 단단해진다. 놀이가 변변찮은 시절에는 이런 것도 놀잇감이 되곤 했는데, 아마 지금 초등학생을 둔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보릿대를 잘라 나팔처럼 한 쪽을 벌린 뒤 까마중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며 까마중 공중부양(?)을 해봤을 것이다. 놀이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보릿대-까마중 놀이라고 해둔다. 오래 불면 머리가 띵해졌지만 누가 오랫동안 떠 있도록 하는지, 또 누가 높이 띄웠다가 보릿대 나팔 위로 내리는지 내기도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가을이 깊어가는 오늘, 아이들이 여러 가지 가을열매와 씨앗을 수집해왔다. 열매로는 배, 사과, 감, 대추, 석류, 밤, 탱자, 모과, 레몬 등이 있고 씨앗으로는 이들 과일을 먹고난 뒤 나오는 씨앗을 비롯해서 해바라기, 팥, 구기자, 맥문동, 도토리, 호박씨가 있다. 이 중에서 까맣고 동글동글한 맥문동은 꼭 까마중을 닮았다. 옛 생각이 나서 보릿대 대신 빨대 한 쪽을 나팔처럼 벌려 호호 불어보니 제법 잘 된다. 빨대는 주름진 한 쪽을 구부릴 수 있어서 보릿대처럼 하늘을 보며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 이 장면을 그냥 지나치랴. 아이클래이로 가을열매 만들기에 그다지 흥미가 없거나 다 만든 아이들이 냄새를 맡고 다가와서는 너도나도 빨대 찾으랴 가위로 자르랴 부산을 떤다. 그리고는 뚝딱 만들어서 너도 나도 분다고 또 야단이다. 처음에는 손쉬운 비비탄 총알을 주로 불더니 조금 있으니 아이클레이를 동글동글 뭉쳐서 분다. 이어서 팥으로 하다가 조금 더 큰 맥문동으로, 또 어른 손톱만한 아이클래이 덩어리도 들어올린다. 무성이와 준하는 한 개로는 부족했는지 비비탄 총알 두 개를 동시에 얹어놓고 불며 '더블더블'이라는 새로운 놀이도 만들어낸다. 본희는 플라스틱 조각 들어올리기에도 도전한다. 도토리는 너무 무거워서 잘 되지 않는다.
놀이를 하면서 내가 비비탄 총알을 지구라고 생각하고 지구를 들어보자고 하니 아이들이 번뜩이는 제안을 내 놓는다. 조금 더 큰 맥문동은 목성이라고 하고 민채가 들어올린 아이클래이 병아리는 해(태양)라고 한다. 또 팥은 태양계에서 가장 작고 까무잡잡한 행성인 수성이라고 이름 붙인다. 아직 이런 공부를 하지 않은 2학년이지만 태양계에 관한 지식이 상당하다. 어쨌든 우리는 태양계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놀았다.
다음부터는 비비탄 총알은 쓰지 말고 가을 열매로만 해보자고 제안하니 아파트 화단에 그런 열매 많다며 당장 나가자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가을 열매 공부도 해야 하고 씨앗 공부도 해야 된다. 그래서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내일이라도 시간이 나면 아이들 모두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가을'을 들어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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