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풍경]
순수한 아이들 마음 읽기
아침 시간에 아이들이 써놓은 글쓰기 공책을 펴봅니다. 줄글(일기처럼)도 보이고 대화글(마주이야기처럼)도 보입니다. 한 대화글을 읽어봅니다.
엄마 : 너 왜 또 바지에 빵구냈어?
나 : 오늘 빵구낸 거 아니에요.
엄마 : 거짓말!
나 : 아니에요.
엄마 : 앉아서 반성해!
나 : 네. (박준현)
남자 아이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입니다. 놀이에 열중하는 시기이다 보니 옷이 구멍나고 찢어진 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은 준현이가 또 다른 이유로 혼날 것 같습니다. 밖에서 가을 단풍잎으로 곤충이나 동물 만들기 할 때 본드를 옷에 잔뜩 묻혀 왔거든요. 본드가 묻었으니 지워질 리가 있나요? 준민이가 도와준다고 돌맹이로 옷을 문지르니 잘 떼진다고 좋아하더니 나중에 보니 검은 얼룩이 더럭더럭 놀러 붙었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알면 말이라도 하겠는데 범인을 모른다니 책임은 고스란히 준현이가 져야겠지요. 다음 글입니다.
우리 엄마가 아프다. 목이 많이 부었다. 엄마한테 고양이 소리가 났다. 우리 엄마가 아파서 아빠가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널었다. 동생이랑 나랑 아빠를 도왔다. 우리 엄마는 병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엄마가 무척 아픈 것 같다. (박세은)
여태껏 살펴보니 아이들은 엄마가 아플 때 가장 어쩔 줄 몰라 하고 불안해합니다. 세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가 고양이 목소리가 날 만큼 상태가 안 좋아서 걱정이 큽니다. 그리고 빨리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 글 속에 묻어있습니다. 어제 번개관측회 때 지영이 엄마도 아파서 못오시겠다고 연락이 왔지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환절기에 건강 유의해야겠습니다.
예전에 길고양이 밥 주러 나갔다가 물그릇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그릇에 민달팽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한테 왜 물그릇에 민달팽이가 있냐고 하니까 엄마는 오랫동안 물이랑 밥을 안 줘서 그런거라고 했다. 난 볼려고 했는데 엄마가 다른 데로 옮겼다. 다음에는 꼭 보고싶다. (허정원)
길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정원이 말로는 그 새끼 고양이는 가끔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양이란 동물은 강아지와 달리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제 마음 가는대로 옮겨다니니 밥을 오랫 동안 안 줬다고 섭섭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니 며칠 전 밀양 집에서 본 새끼 고양이가 생각났습니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밀양집에는 큰 고양이가 서너 마리 들락날락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교통사고로 죽거나 약 먹고 죽어서 집에는 일 년 가까이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고양이를 기다리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락 자루를 파헤치는 쥐를 잡아주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은 반찬을 제법 처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혼자 살기에 적적한데 가끔 얘들이 찾아와주면 말상대라도 되거든요. 그런데 지난 주말에 밀양집에 들렀더니 아주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아옹거리며 마당을 서성이더군요. 어머니 말로는 얼마 전에 뒷집 헛간에 한 어미가 와서 새끼 세 마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 녀석들이 제법 자라서 이 집 저 집 마실을 다닌다고 합니다. 어려서 그런지 손을 내밀어도 도망 가지 않고 마당에 뒹굴며 애교(?)까지 부리는 녀석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정원이는 몸이 간지러워서 뒹굴거나 긁는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애교로 보였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서 내내 우리 집 주위를 맴돌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갈 때 민채에게 리본을 선물했다. 민채도 좋아했다. 선물이 좋았으니까. 나도 행복했다. (정경호)
아침에 출근했더니 민채가 경호한테 선물받았다며 예쁜 리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생일도 아닌데 웬 선물일까? 민채도 의아해했습니다. 물론 눈치 빠른 여학생이니 속으로는 짐작 했겠지만 겉으로는 그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경호 글을 보고 그 속마음이 드러났습니다. 경호하고 나눈 대화입니다.
나 : 왜 선물했지?
경호 : 이야기 못해요.
나 : 이유가 있을텐데?
경호 : 그냥요. 민채가 행복해해서요.
나 : 아닌 것 같은데. 민채가 좋아서?
경호 : 그건 비밀이에요.
평소에도 부끄럼을 잘 타지만 경호는 이 때 얼굴도 살짝 발그레졌습니다. 말 안 해도 속마음을 다 알 수 있었지요. 뭐, 건전하게 말하자면 민채는 늘 경호를 도와주기 때문에 경호가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싶은데 경호 얼굴이 발개진 건 왠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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