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아이들의 음악 정서

늙은어린왕자 2014. 12. 24. 21:14

며칠 전, 오랜만에 노래를 한 곡 부를까 싶어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복사해 불러보았다.
이 노래는 '예민'이라는 가수가 옛날에 불렀는데 무척 조용하면서도 서정미 넘치는 곡이다. 어른들이라면 한번 쯤은 들어보았을 노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노래다.

가사를 보면 언뜻 중학교 때 배운 황순원 작 '소나기'라는 단편소설이 생각나기도 한다. 가사의 주요 내용을 보면 산골에 사는 한 소년이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 풀잎새 엮어서 풀잎모자도 만들어놓고 꽃송이도 엮어 놓고 동산에 달이 떠오를 때까지 냇가에서 기다렸는데 소녀는 결국 오지 않는다는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가사가 눈에 익어갈 즈음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가 음을 확실히 알기 위해 연주용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아이들의 반응이 확 묻어나왔다. 평소에 노래를 부르자면 온갖 주리를 틀던 아이들이 이 슬픈 사랑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잠잠해지는 것이었다. 무슨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다.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여학생 몇 명은
"선생님 노래가 너무 슬퍼요."
하면서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던 감정까지 쏟아내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2분단에 앉은 여학생 4명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울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도 우는 연습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었지만 진짜 눈물을 쏟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는 동요풍의 노래가 영원히 체질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네들에게는 뱃속에서부터 여태껏 접해온 음악인 대중가요가 이미 골수 깊숙히 배어 있고 그런 가사가 자신들의 정서와 일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사실이라고 단언한다. 이미 동요풍의 음악 시간은 이 아이들에게는 매우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시간으로 변해버렸으니까.

가요처럼 발랄하면서도 서정적인 음계와 사랑을 속삭이는 가사 앞에서 우리 아이들은 반응을 한다? 이것이 현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열 세살 사춘기에 입문하는 아이들의 정신연령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20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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