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금붕어의 죽음과 환경문제

늙은어린왕자 2014. 12. 24. 21:15

 

누구나 우리네 환경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문제가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단지 '공부'로만 학습하고 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행히 자연 2학기 첫 단원이 환경 관련 내용이라 아이들과 환경문제에 관해 같이 고민하고 생활속 실천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같아 몇 가지 주제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금붕어 실험'은 그 첫 실험이다. 합성세제로 오염된 물에 금붕어를 넣었을 때 일어나는 일을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교과서에서는 장구벌레로 실험하라고 되어 있으나 가을철에 장구벌레를 구하는 것이 어렵고, 생활과 동떨어진 작은 벌레여서 생동감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이들과 비교적 친숙한 금붕어를 택하게 된 것이다.
우선, 실험은 9월 6일 2교시, 교실에서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2교시는 자연시간이었다.
"이번 시간에는 오염된 물이 생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험으로 알아봅시다."
실험을 한다는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교탁 위로 올망졸망 모였다.
미리 준비한 유리 그릇 두 개에 물을 담고 한 쪽에는 옥시크린 가루와 퐁퐁을 조금 넣었다.
"맑은 물과 합성세제로 오염된 물에 각각 금붕어를 한 마리씩 넣겠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잘 보세요."
비닐 봉지 안에는 불그스름한 금붕어와 검붉은 금붕어가 아무 것도 모른채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나 샤알레로 금붕어 한 마리를 떠내자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다.
"으아악!"
"선생님, 금붕어가 불쌍해요."
아이들은 실험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샤알레 위에 얹힌 놈은 불그스름한 금붕어였다. 꼬리를 가볍게 흔들며 입을 오물거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솔직히 나 자신도 실험결과를 알고 있는 터라 측은한 마음이 앞섰다.
"이 놈을 먼저 오염된 물에…"
샤알레를 오염된 유리그릇 쪽으로 옮겨가자 아이들이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안돼!"
"맑은 물에 넣지요!"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어짜피 오염된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텐데도 먼저 넣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금붕어를 맑은 물에 넣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금붕어는 꼬리를 흔들어대며 이리 저리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럼 이 놈은 할 수 없구만."
검붉은 금붕어를 떠서 오염된 물에 넣자 아이들은 불쌍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금붕어는 그릇 안쪽을 한 바퀴 돌더니 곧 숨이 막히는지 몸동작이 둔해졌다. 입을 수면으로 대는가 싶더니 아가미를 실룩거리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선생님은 악마다."
"살인마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은 금붕어의 답답한 움직임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내가 악마라면 너희들은 악마의 형님 누나들이지. 집에서 너희들은 아무 생각 없이 여기 넣은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합성세제를 쓰잖아."
"치, 그래도 선생님은 금붕어가 죽는 걸 즐기고 있잖아요."
"하지만 공장 폐수를 몰래 버려서 고기를 한꺼번에 몇만 마리나 죽이는 못된 사장님보다는 낫잖니. 또 이건 실험이고."
"아무리 실험이라도 저렇게 예쁜 고기가 죽는 걸 어떻게 보고 있어요."
옥신 각신 하는 사이에 검붉은 금붕어의 몸이 기울었다. 잠시 뒤 금붕어가 물 위로 떠올랐다.
"금붕어가 죽었다."
앞에 앉은 아이가 소리치자 모두들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러나 나무막대기로 밀자 금붕어는 다시 실룩거리며 맥없이 몸을 움직였다.
"선생님, 우리 실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다 아니까 이제 그만 꺼내지요. 그러다 진짜 죽겠어요."
"그럴까?"
아이들의 간절한 요청도 있었지만 내 마음도 썩 개운치 않아서 반쯤 죽은 듯한 금붕어를 꺼내 맑은 물에 넣었다. 금붕어는 아가미를 제법 벌럭이며 삶을 이어갔다.
"야 이제 살았다."
아이들의 표정이 금새 밝아졌다.
"자, 이제 들어가서 실험결과를 기록해보자."
아이들이 기록하는 사이 맑은 물을 더 떠와서 금붕어의 몸에 묻은 세제를 씻어주었다. 하지만 금붕어는 기울어진 몸을 다시 세우지 못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결국 금붕어는 다시 물 위로 떠오르고 말았다. 막대기로 흔들어주어도 반응이 없었다.
"얘들아, 금붕어가 죽었다."
몇몇 아이들이 나와서 금붕어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아쉬운 표정만 짓고 들어갔다.
쉬는 시간에 금붕어 장례를 치렀다.
"우리들의 환경공부를 위해서 장렬하게 죽어간 금붕어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무덤은 창수와 서찬이가 만들기로 했다. 모종삽을 건네주며 화단에 묻어주라고 했다.
잠시 후 두 아이가 돌아왔다.
"잘 묻어주었니?"
"예, 무덤을 만들고 절도 했어요."
'환경 오염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 수업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 실험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이틀 뒤 간단히 알아보았다.
"집에서 합성세제를 쓸 때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손을 든 아이는 대략 절반 정도였다.
"합성세제 사용을 조금이라도 줄인 사람 손들어보세요."
6-7명이 손을 들었다. 그 중 한 아이는 머리감을 때 샴푸 대신 비누를 쓴다고 했다.
아마 며칠 뒤면 아이들은 또 예전의 생활패턴대로 생각 없이 샴푸를 풀고 퐁퐁을 짜낼 것이다.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삶의 방식이 바뀌는 것은 아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분이 채 못되어 물위로 떠오른 금붕어의 처참한 모습을 언뜻 언뜻 떠올리기만 해도 이번 수업은 성공일 것이다. 금붕어한테는 미안하지만...(200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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