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반의 Y군은 행동이 남보다 조금 느리고 어리숙하게 보여서 자주 친구들과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다 친구들에게 더러 맞기도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왕따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아직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듯해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3교시를 마치기가 무섭게 열림터로 한 아이가 달려와서 Y군이 J군에게 맞아 울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것도 그냥 손으로 친 게 아니라 플라스틱 파이프로 맞았다고 한다. Y군을 데려와서 옷을 벗겨보니 과연 일자형으로 피부가 벌겋게 달아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내가 쓰는 물건으로 다른 친구를 때렸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Y군을 때린 J군은 이번 일 말고도 여러 번 Y군을 건드려 나한테 주의를 받은 터였다. 아이들 말로는 Y군을 제일 많이 괴롭히는 아이 중 하나가 J군이라고 했다.
J군을 불렀다. 왜 때렸는지 이유를 묻기 싫었다. 뻔하니까. 어떻게 친구를 파이프로 때릴 수 있느냐고 추궁하고 싶었지만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저번에도 절대 안그러겠노라고 다짐을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냥 골마루에 엎드려 있으라고 했다.
4교시-5교시는 사회시간. 예정된 '김옥균 모의재판' 을 하기로 되어 있어 J군을 그냥 골마루에 둔 채 모두 시청각실로 내려갔다. 데려가기가 싫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친구를 괴롭혀 잘못을 했을지라도 수업에는 참여시켜야 되겠다 싶어 시청각실로 불러왔다. 눈에 가시처럼 보였지만....
재판이 모두 끝나고 교실로 돌아오자 마자 J군을 다시 골마루에 엎드려 있게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놈을 하루 종일 벌을 세워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따끔하게 벌을 주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Y군이 내게 다가 오더니 나즈막한 소리로
"선생님, J군에게 그만 벌 주지요."
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과의 일로 친구가 벌을 받고 있는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네가 맞았는데 그래도 되겠나?"
"예."
순간 갈등이 일어났다. 이번 만큼은 따끔하게 벌을 주어야 하는데 정작 맞은 당사자가 그만 벌을 주라고 하니 말이다. 또 그런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Y군이 너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평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싫다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마음이 여리고 착한 Y군이었다. Y군의 의견을 존중하는게 좋겠다 싶어 J군을 불렀다.
"봐라. Y군은 자기가 맞았는데도 오히려 네 걱정을 해서 벌을 그만 주라고 한다. 너 이런 Y군을 그래도 때릴 수 있겠나?"
"......"
J군은 자신이 왜 불려왔는지 이유를 듣고는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간단히 타일러 돌려보냈지만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J군도 오늘만큼은 Y군의 넓은 마음을 읽었으니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나 하고 희망을 가져본다.
(200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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