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선생님]
지구에서 만난 귀신(2)
4교시 시작 무렵 빨간색 꽃무늬 색종이 한 장이 내 책상위로 날아왔다. 색종이 안에는 세 명이 쓴 편지글이 들어있다.
쌤 우리 이벤트 하구 공부 안 하면 안 돼여? 저 오늘 학원 마~니 가는데(민채)
선생님 오늘 공부하지 말고 특별이벤트로 무서운 이야기 해요.(준민)
쌤 우리 오늘 공부 안 하고 이벤트 하면서 놀면 안 돼여?(본희)
'공부', '이벤트' 이렇게 같은 낱말이 들어있는 걸로 봐서 세 명이 작전을 야무지게 짠 듯하다. 학예회 마지막 날이라고 공부시간을 날로 먹으려는 게 틀림없다.
"얘들아, 방금 편지가 왔는데 읽어볼까?"
"네에!"
목소리가 우렁차다. 꼬물이들은 역시 책 펴라는 소리 빼곤 다 좋아한다.
"잘 들어봐. 첫 번째 편지는 '쌤 우리 이벤트 안 하구 공부하면 안 돼여? 저 오늘 학원 안 가는데' 이렇게 썼고‥."
"아니잖아요!"
"왜 거꾸로 읽어욧!"
꼬물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아냐. 진짜 이렇게 쓰여 있어. 다음 편지도 그래. '선생님 오늘 공부 열심히 하고 특별이벤트로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마요' 세 번째도 마찬가지야. '쌤 우리 오늘 공부 하고 이벤트 하지 마요' 이래."
"에이, 아니네."
"그렇게 안 쓴 거 다 봤어요."
확인하기 좋아하는 몇몇 개구쟁이들이 어느 새 내 뒤로 와서 편지를 훔쳐본다. 김 빼는 데는 일류 선수들이다.
"좋아. 오늘은 학예회 끝나는 날이니까 지난번에 하던 얘기 마저 하자."
꼬물이들이 환호하는 사이 나는 나는 칠판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을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음‥…. 어디까지 했더라? 집 안에서 시체가 나오고 여자가 울었다고 했잖아?“
"그건 했어요.“
"그렇구나. 그래도 들어봐. 나는 그거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우리 안드로메다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절대 눈물을 안 흘리거든."
"죽으면 천사가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 사람이 죽어도 천사가 돼서 가끔 나타난단 말야. 사람들이 천사를 얼마나 기다린다구. 천사를 보는 게 행운이니까."
"그럼 누가 사람을 막 죽이면 어떡해요?"
"아냐, 그래도 하나 뿐인 생명인데. 사람 죽이면 징역 400년이야."
"우와~ 죽이면 안 되겠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 하며 누워있는데 촛불이 흔들흔들 하더니 누가 열려는 듯 방문이 덜거덕 덜거덕 해. 이게 뭐야 하면서 일어나 보니까 아무 일이 없는 거야.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 누웠어. 근데 조금 있으니까 뚜르르 뚜르르르 돌덩이 굴러가는 소리가 나네? 도대체 뭔 일이야 하면서 일어나 보니까 글쎄 방구들이 조금 무너져 있어. 발로 쿵쿵거리며 굴리지도 않았는데 말야."
"근데 방구들이 뭐에요?"
꼬물이들은 궁금한 것도 많다. 나는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온돌이며 시골집 방 구조를 설명했다.
"방구들을 가만히 지켜봤더니 더는 무너지지 않고 또 아무 일이 없어. 하는 수 있나. 다시 누웠지. 이제 잠이 들려고 해. 눈꺼풀이 아래로 스르르 내려 와. 잠 좀 자겠거니 생각하는데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촛불이 휙 꺼져. 방문이 덜거덕거리고 돌덩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어서 나. 그리고는 저쪽 방과 이 방 사이에 있던 흙벽이 우두두둑 무너지는 거야. 어두워서 눈으로는 안 보였지만 흙먼지가 코로 확 밀려들어왔어. 무슨 일이 일어날 건가봐. 잠깐 뜸을 들이고는 쿵~ 쿵~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무너진 흙벽 속에서 시커먼 괴물 같은 게 나타났어. 나는 자는 척 하며 실눈을 뜨고 봤지. 근데 그 괴물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네. 세상에나! 가까이 왔을 때 보니까 그게 사람 모습을 하고 있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달빛, 별빛이 있어서 뭐든지 눈에 보이거든. 저번에 봉하마을에 별 보러 갔던 사람은 알잖아. 훤히 다 보였지?"
"맞아요. 잘 보였어요."
"놀이도 했잖아요."
"그래. 근데 그 괴물이 내 발밑에 우뚝 섰어. 나는 실눈을 더욱 작게 하고 이렇게 봤어."
내가 실눈 뜨고 보는 시늉을 하자 몇몇 꼬물이들이 두 손을 꽉 움켜쥔다.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괴물은 머리에 흙덩이가 덕지덕지 붙었고, 눈알만 있었지 얼굴이고 뭐고 살점이 거의 없어. 머리뼈에 붙은 턱이 덜렁덜렁 하고 팔뼈도 어깨에 겨우 매달려서 흔들흔들 하네. 가슴하고 배에도 썩은 살점 사이로 갈비뼈가 우뚝우뚝 튀어나와 있어. 한 마디로 송장이야. 썩은 시체란 말야. 너무너무 흉측해. 이 모습을 직접 보면 모두 기절하거나 심장마비로 죽을 걸? 어제 죽은 사람도 이걸 보고 죽었나봐."
꼬물이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비명을 지른다. 양쪽 검지손가락으로 귀를 막는 녀석도 있다.
"근데 이놈이 허리를 슬며시 굽히더니 나를 관찰해. 기분이 너무 나빴어.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 도저히 못 참겠는 거야. 그래서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지. '너 누구냐!' 송장이 깜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섰어. 그러자 어깨에 매달려 있던 팔뼈 하나가 툭 떨어져. 여태까진 사람이 놀랐는데 이번에는 지가 놀란 거지. 그러더니 송장이 턱을 덜렁덜렁 흔들며 말을 하네? '나를 보고도 안 무서워? 여태까지 나를 본 사람들은 놀라서 모두 죽었는데‥….' 내가 대답했지. '난 지구 사람이 아니야. 무서운 걸 몰라.' 송장이 물어. ‘그럼 뭐야?’ 그래서 내가 오늘 안드로메다에서 온 일이며 지구에 와서 있었던 일도 얘기해주었지. 송장은 '내가 살 때는 외계인이 없었는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하며 신기해 해. 아무리 봐도 송장이 나를 해치러 온 것 같지는 않았어. 어쨌든 '긴 말 할 것 없고 빨리 할 말이나 해. 나 피곤해서 자야 해!' 이렇게 딱 잘라 말했지."
꼬물이들은 귀신한테 당당한 내 모습을 재미있어 한다.
"송장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어. 자기는 사실 백오십 년 전에 살던 사람인데 못된 부자 영감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네? 그러면서 떨어지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며 흐느끼는 거야."
이 때 호기심 많은 꼬물이들이 손을 든다.
"근데 왜 서로 반말을 해요?"
"맞아요. 선생님은 이백 살 넘잖아요. 근데 송장은 백오십 살 밖에 안 됐잖아요. 오십 살이나 차이 나는데."
꼬물이들은 가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한다.
"음~ 그건 말야. 나이가 들면 나이가 없어져."
"나이가 없어진다는 게 뭐에요?"
"빵(0)살이 된다는 말이에요?"
꼬물이들이 이렇게 말해놓고 막 웃어댄다. 녀석들은 언제나 재미거리를 찾아 즐긴다.
"나이가 많아지면 내가 많니 니가 많니 안 따진다는 뜻이야. 너희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되면 그럴걸? 하여튼 내가 송장에게 물었어. '억울하게 죽어서 어떻게 됐는데?' 송장은 떨어진 팔뼈를 주워서 어깨에 끼워 넣더니 '그 때 죽은 내 시체가 여기 있어. 그 영감이 나를 여기에 묻어버렸어.' 하며 손으로 방바닥을 가리키는 거야. '그럼 그대로 누워있으면 되겠네. 왜 밤마다 나와서 난리야.' 이랬더니 송장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어. '뜨거워. 뜨거워도 너~무 뜨거워. 사람들이 춥다고 불 땔 때마다 뜨거워서 견딜 수 있어야지. 그래서 이야기하려고 나왔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송장이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모양이야. 내가 물었어. '그럼 내가 뭘 도와줄까?' 그제야 송장은 휴우 한숨을 내쉬더니 '구들장 밑에 묻힌 내 시체를 파서 저 뒷산에 묻어주면 고맙겠어.' 이래. 나는 알겠다고 했지. 송장은 내가 자기 소원을 들어주면 자기도 내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며 말하라는 거야. 나는 안드로메다에 있는 우리나라가 망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터 지구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지. 송장이 알겠다며 내일 자기 시체 묻어주고 오는 길에 마당을 보라고 해. 그렇게 말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에 마당에 나가보니 괭이랑 삽이 떡 놓여있어. 송장이 밤에 갖다 놓은 모양이야. 그걸로 구들장 아래를 파니까 정말 지난밤에 봤던 송장이 누워있어. 뼛조각 하나까지 모두 파내서 뒷산에 묻어주었지. 그러고는 마당에 들어오는데 아침에는 없던 쪽지가 한 장 놓여있네. 거기에 '밀양 땅 못골(저수지골)로 가라.' 이렇게 써놓았어."
"거기 선생님 어릴 때 살았던 마을 아니에요?"
"처녀귀신 나왔잖아요."
"애기 귀신이랑 술 취한 아저씨도 있었잖아요."
꼬물이들의 이 무서운 기억력이란! 이야기에 목매는 녀석들은 한 번 들려준 내용을 절대 까먹지 않는다.
"맞다. 바로 그 마을이다. 근데 쪽지에 글이 더 있어. '마을 어귀에서 두 번째 집에 가면 배가 불룩한 임산부가 있다. 그 임산부 뱃속에 들어가라.' 이렇게 써놓았지 뭐야."
"근데 어떻게 뱃속으로 들어가요?"
"그러게, 그게 문제지. 가만히 보니까 쪽지 아래에 방법도 써놓았어. 임산부가 잠들고 꿈꾸기를 기다렸다가 그 꿈속으로 들어가면 안드로메다에서 온 내 몸은 사라지고 영혼만 뱃속 아기에게 들어가게 된다고 말야."
외계인이었던 내가 지구인이 되는 비밀은 바로 '태몽'이다. 꼬물이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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