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생활일기

마음을 울리는 이상권 선생님의 일기

늙은어린왕자 2006. 5. 21. 07:45

이상권 선생님은 주말학교인 '해보기학교'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평범한 남성 가정주부이다. 교사인 아내 대신 집에서 두 아이의 육아를 담당하면서 날마다 육아일기를 써서 메일로 보내준다.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스팸메일 가득한 쓰레기통 같은 메일을 열다 보면 짜증만 늘지만 그 속에서 유일하게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는 메일이 바로 이상권 선생님의 일기다. 자세히 읽지는 못할지라도 보관은 꼭 해둔다. 언젠가는 읽어보리라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소나기에 무더위가 한 풀 꺾인 오후, 이상권 선생님의 메일을 열었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제목이 남달라  몇 구절 읽었는데 너무 감동을 주는 내용이었다. 여름 풍경을 어쩌면 저렇게 신선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집에 머문 여름과 이상권 선생님 집에 머문 여름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이상권 선생님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각도에서 바라본 여름 풍경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아서 옮겨놓는다.

 

* 사랑스런 눈빛으로 *   2005. 8. 12. 맑은 날

송글송글 맺혀 조루룩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여름 더위를 내신 말해줍니다.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며 찬 것을 찾는 아이의 숨넘어갈 것 같은 다급한 몸짓에서 여름이 묻어납니다.

아내는 어깨까지 내린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럽다면서 올린머리를 하면서 더위를 원망할 때 여름은 아내의 하얀 목살에서 반짝입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어설픈 걸음걸이도 여름이 뛰뚱거리며 쫒아다닙니다.

빨갛게 돋아나는 작은 불청객들!

부채 하나 사 들고 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더위를 몰아내는 아빠의 손짓에서 여름 시간은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 했던 2005년의 여름이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사랑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의 가정에 여름처럼 따스함이 가득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리막길로 치닫는 여름 담은 시간 건강 잘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풀벌레 소리가 너무 정감있게 들려오는 날들입니다.

내 앞으로 선뜻 나서 노래 부르면 아름다운 노래 불려 줘 고맙다는 말 건네며

커다란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너를 볼 수 없으니 나의 이런 맘 전할 수가 없어 무척 아쉽습니다.

하지만 네 노래소리 공짜로 듣는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내 아름다운 목소리 높아지는 것을 들으니 계절이 바뀔 때가 되었나 봅니다.

조금 있으면 가을이 찾아오겠네요.

 

가을도 여름처럼 가족들의 눈빛과 얼굴과 몸짓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이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어요.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혼돈의 시간, 풀벌레 노래소리 들으며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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