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책을읽고

독서교육에 관하여

늙은어린왕자 2007. 2. 27. 09:19

독서교육에 관하여

 

‘한 해 동안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 각자의 영혼을 흔들어줄 만한 책 한 권만 만나기만 하면 나의 독서 수업은 성공이 아닌가?’ (박홍진)

3월이 되어 교실 환경 꾸미기가 한창이다. 여교사들에 비해 손이 꼼꼼하지 못한 관계로 우리 반의 환경구성은 늘 늦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반이 환경을 갖추어놓으면 그 아이디어를 우리 반의 실정에 맞게 꾸미곤 한다.

지난주에 우리 학교에서는 환경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늘 그렇듯이 다 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반을 돌아보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각 반의 독서교육 관련 게시판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먼저 학년부장 선생님의 교실로 갔더니 ‘독서 오름길’이라는 타이틀 아래 일명 ‘찍찍이’를 가로로 몇 줄 붙여놓고 각 줄마다 왼쪽에 10권, 20권, …, 60권 이렇게 붙여 놓았다. 오른쪽에는 아이들 이름이 적힌 이름표가 부직포에 붙어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책을 열 권 읽으면 자기 이름을 ‘10권’ 줄에다 붙이는 식으로 되어 있다.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선생님은 60권이 넘는 아이에게는 뭔가 보상을 할 것이다.

몇 칸을 건너뛰어 다른 반 교실로 갔더니 역시 독서현황판이 있다. 그 반은 ‘찍찍이’ 대신 종이컵을 각 단계마다 붙여놓았다. 종이컵 앞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10권, 20권, …, 100권 이런 식으로 앞의 교실과 같이 독서수량을 알 수 있는 표시를 해 놓았다. 숫자가 붙어 있지 않은 컵 안에는 이름표가 붙은 15cm 쯤 되는 나무막대가 아이들 수량만큼 꽂혀있다. 10권을 읽은 아이는 자기 이름을 ‘10권’ 컵에다 꽂을 것이다.

몇몇 반을 더 둘러보았는데 대체로 독서관련 게시판은 위의 두 가지 예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교사 입장에서 보면 각 개인의 독서의 질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위의 예처럼 양적인 관리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독서 후 활동의 결과물을 개인 포토폴리오에 넣어두거나 반 전체 것을 모아 스크랩을 해둘 것이다.

꼭 독서관련 게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시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독서교육이 경상남도나 김해시, 우리학교의 교육시책이다 보니 선뜻 무시할 수는 없다. 환경구성을 위해 다른 반의 사례를 그대로 따를까 하다가 다른 방법을 썼다. 환경구성에도 도움이 되고 책읽기에 관한 바람도 불어넣을 겸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 표지 만들기’를 했다.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의 표지 형태를 그대로 따오되 그림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 넣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로 게시판의 한 쪽 면을 채웠다.

이렇듯 해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독서교육 관련 활동은 대개 환경구성을 할 때 독서 게시판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다. 학급문고가 있는 반은 문고정리도 3월에 하게 된다. 둘러본 몇 개 반 가운데 좀 특이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 반 담임교사(4학년)는 학급운영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칠판 앞에 교사용 책상이 있고 그 앞에 책꽂이가 대여섯 개 놓여있었는데 좋은 책이 가득하였다. 집에 있는 책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 반은 학급문고를 운영하면서 독서교육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마다 3월이면 이러한 가시적인 활동 외에 학급운영 속에서 독서교육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학교 도서관이 없을 때는 학급문고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고, 책 선물하기, 책 읽어주기, 독서퀴즈대회 등 다양한 독후활동을 통해서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독서교육을 해왔다.

올 해 첫 독서관련 활동으로 책을 읽어주는 것을 선택하였다. 6학년 1학기 사회 과목은 통째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룬다. 역사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추상적인 주제들을 다루므로 우선 역사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한 권 읽어주었다. 선사시대, 청동기시대를 훑고 넘어가면 삼국의 발전과정이 나오는데, 이 단계에 알맞다고 판단한 ‘『어린이 역사소설 고구려』, 송언 지음, 우리교육’를 읽어주었다. 이 책은 대여섯 번은 읽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듯 읽어주었는데, 다 읽고 나니 책을 빌려달라거나 서점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등의 반응이 좋았다.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어린이들에게 효과적인 독서교육은 독후활동 보다는 위의 사례처럼 책 읽어주기 같이 교사가 몸으로 보여주는 활동이나 아니면 책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책 읽어주기도 꾸준히 하겠지만 올 해부터는 그 동안 소홀히 했던 학교 도서관을 활용하는 수업시간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우선 생각하고 있는 수업형태는 사회과에서 주제와 관련되는 도서 읽기 시간을 확보하여 책을 읽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서 선생님한테 들려주기’ 같은 활동을 해볼 계획이다. 때에 따라서는 과제를 안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박홍진 선생님의 사례처럼 정규 읽기 시간 3시간 중 한 시간을 ‘자유 독서 시간’으로 활용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시간에는 교과 학습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전략 독서보다는 문학이나 교양 서적류로 범위를 크게 두어서 아이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책을 선택하여 볼 수 있도록 해볼 것이다. 이런 방법들이 책 읽을 여유가 없는 어린이들에게 독서가 친숙한 친구로 다가설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학교의 도서관(어머니 도우미들이 활동함)은 교실이 거의 없는 1층 중앙현관에 있어서 아이들의 접근도가 많이 떨어진다. 게다가 하루 종일 햇살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음지교실을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일부러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정말 그 곳에 도서관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책은 크게 적지 않아서 어느 정도 독서갈증을 풀어주는 정도는 되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가는 전략이 통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서 후 활동은 그 다음에 생각해볼 계획이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박홍진 선생님의 글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한 해 동안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 각자의 영혼을 흔들어줄 만한 책 한 권만 만나기만 하면 나의 독서 수업은 성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