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밭 아이들'을 읽고
“3월초 첫 만남 때 아이들은 무섭게 잡아놓아야 한다. 그래야 일 년 내내 편안하다. 처음부터 너무 잘해주면 나중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잡지도 못한다.”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들었을 말이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교사가 그 말이 불문율인양 그대로 믿고 따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교직경력이 10년이 넘지만 여전히 3월이 되면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설까 늘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웃음과 다정다감함으로 다가서는 것이 더 좋으리라는 믿음 하에 줄곧 그런 모습으로 서 왔다. 물론 그러면서 나 스스로 최대한 아이들 편에 서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그런대로 괜찮은 교사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러나 모래밭 아이들을 읽고 난 후 그 책을 읽은 단 몇 시간 만에 내가 얼마나 현실과 타협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런 자립적이지 못한 교사인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나의 아성에서만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은 구즈하라 준이라는 임시강사가 문제반이라고 불리는 3학년 3반 친구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써 놓은 책이다.
물론 단순히 학교현장을 조명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면 이 책이 무의미하겠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포기해버린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문제아라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들에게 어떠한 격식이나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서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고 또 아이들 또한 그런 담임선생님의 진실한 모습에 서서히 마음을 열고 변화하게 되는 부분이 인상 깊은 책이다.
특히 간바라 미치코를 대하는 구즈하라 준 선생님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늘 난 네 마음 안다고 접근하면서 결국엔 교사의 권위를 떨치지 못하고 훈계나 격려를 하며 스스로 대견해했던 나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구즈하라 준은 간바라 미치코에게 그 어떤 강요를 하지 않았다.
문득 이 책을 읽는 내내 가까운 어느 선생님과 구즈하라 준과 오버랩이 되는 착각을 느꼈다. 그 선생님은 구즈하라 준 선생님과 닮은 곳이 많다. 아이들에게 훈계를 하거나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그저 아이들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다. 아이들이 아무리 버릇없이 굴어도 화를 내지 않고 그에 맞게 농담을 던진다.
급기야 술자리에서는 교무부장 선생님과 학생지도에 관해 시비가 붙었는데 그 선생님의 입장은 이랬다. 교무부장이 그 반 아이들이 너무 복도를 뛴다고 하자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복도를 뛰지 말라고 말하기 이전에 복도에서 뛰어다녀도 다치지 않을 두터운 스펀지 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그 반 아이들은 급식소로 가는 길이나 급식소에서도 아이들은 즐겁게 밥을 먹어야 한다고 냅다 달리기를 해서 가기도 하고 때론 어깨동무를 하고 가기도 한다. 물론 밥을 먹을 때도 반별로 일렬로 앉아 먹지 않는다. 자기가 먹고 싶은 친구들끼리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먹는다. 선생님은 그 속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고...
사실 이런 문제는 수많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현재 우리나라 학교 구조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학교에 계신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이 선생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이해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문제는 질서만 강조될 뿐 다른 방식은 쉽게 통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선생님은 특히 어느 선생님과는 비슷한 연배인데 극심한 교육관의 차이 때문에 늘 부딪힌다.
나는 근본적으로 구즈하라 준 선생님의 생각이나 태도 그리고 질서를 의식하지 않는 동료 선생님의 교육관에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늘 생각과 행동이 달리 나오는 것은 주변의 질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핑계 때문이다. 모래밭 아이들을 읽고 느낀 점이 이러한 핑계를 줄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2006.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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