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교육일기

자연과 벗하고 우정을 키우는 우리 반 숲 속 학교

늙은어린왕자 2007. 2. 27. 10:59

 

자연과 벗하고 우정을 키우는 우리 반 숲 속 학교

 

  연간 학급운영 과정에서 여름방학은 커다란 전환기이다. 마치 축구경기를 하던 선수들이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대비하여 숨고르기를 하거나 모자라는 수분을 채우기 위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 선수들은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격려해주기도 하고 전반전 경기의 흐름을 되돌아보며 잘한 점은 이어가되 모자라는 점은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후반전에 나서게 된다.
  여름방학도 잘 활용하면 학급의 1년 살림살이에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 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는가 하면 각 가정마다 전화를 하여 아이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부모님과 상담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분은 그 동안 소외되었던 아이들과 따로 약속을 정하여 기차여행을 하거나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필자는 고향인 시골로 근무지의 도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우리 반 숲 속 캠프'를 여는 기회로 여름방학을 활용한다. 한 학급에서 몇 개월을 같이 생활했다고 해도 의외로 아이들은 서로간에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학기 중에 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집단상담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런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방학중에 아이들과 함께 할 이런저런 활동을 계획하게 되는데 시골에서 여는 캠프활동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서로간의 관계가 깊어지려면 함께 먹고 자며 활동을 해보는 것이 확실한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학교에서 여는 뒤뜰 야영도 함께 생활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긴 하다. 무엇보다 차를 타고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고 학교 테두리 안에서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절차가 간편하다. 시간과 장소 때문에 고민하는 학급이라면 이 방법도 권할 만하다. 그러나 늘 생활하던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흩어진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가 쉽지 않고 자연과 만날 수 없는 관계로 주변 환경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학교에서 야영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방학을 하고 바로 1박 2일 일정으로 야영을 하게 되었는데 텐트를 옥상에 설치하였다. 운동장이 아닌 옥상을 영지를 잡은 까닭은 운동장에서 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안전문제도 고려 대상이 되었지만 학교 경비실에서 보안장치를 해야 하니 들락날락할 수가 없어서 화장실 이용 등이 불편하였다. 그런데 이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학교 담장 옆에는 큰 아파트단지가 있었고 뒤에는 자그만 암자가 있었다. 학교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는 흥분된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정이 넘어도 잠을 자지 않고 옥상을 제 집 앞마당 마냥 돌아다니며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시끄러워서 기도를 할 수 없다고 암자에서 연락이 왔으니 좀 조용히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아이들을 불러모아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 텐트 저 텐트에 삼삼오오 모여서 게임을 즐겼다. 경비실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아파트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교육청에 고발한다고 핏대를 세웠다고 했다. 결국 일이 심각함을 깨달은 우리는 조용히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한적한 시골에서 캠프 활동을 하면 절차는 다소 복잡해질 수 있지만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연을 이용한 놀이나 여러 가지 활동이 다양하게 할 수 있고 낯선 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쉬이 열린다. 시골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물놀이, 동식물 관찰, 가재나 다슬기 잡기, 자연물로 표현하기, (대)나무로 새총이나 물총, 젓가락 만들어보기, 별자리 관찰하기, 추적놀이와 담력 기르기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활동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또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옛 이야기 듣기나 그 지방의 문화유적지를 미리 알아두었다가 탐방해보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필자는 뒤뜰 야영도 해보고 시골 캠프도 열어보았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마음을 열어 우정을 다질 수 있는 시골 캠프를 학급 경영의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로 잡고 있다. 장소를 고향 마을로 잡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 마을의 구석구석까지 훤히 알고 있어서 활동 계획을 세울 때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놀이는 어디서하고 젓가락이나 물총을 만들 나무는 어디에서 구해오며 추적놀이를 할 경로와 별자리 관찰을 하기 좋은 장소는 어디로 할 것인지 선정하는 것이 손쉽다. 또 마을 사람들을 대부분 다 알고 있어서 활동하기에 편하고 이장님에게 말씀만 드리면 마을 회관을 숙소로 이용할 수 있다.

시골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요즘 시골에서 어린아이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필자의 고향 마을에도 학교는 벌써 폐교되었고 젊은이들이 없어서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이 노인인 마을 사람들은 반 아이들을 제 손주 마냥 반가이 맞아주며 잘 놀다가라는 덕담도 잊지 않으신다. 더러는 밤에 마을 회관 앞에 삼삼오오 오셔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한다. 

 

  몇 해 전 여름 방학에도 반 아이 20명과 함께 필자의 고향 마을이 있는 밀양으로 캠프를 갔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 얼음골 계곡에 들러 더위를 식힌 뒤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필자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반갑게 맞아주셨고 뒤이어 달려오신 마을 이장님이 친절하게 마을회관의 문을 열어주셨다.  
  첫날 저녁 프로그램은 '야간추적놀이'였다. 추적놀이는 대개 지도상의 목표지점을 기호를 풀며 찾아가거나 각 목표지점에서 지시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아직 시골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것도 캄캄한 밤에 기호와 지도만으로 목표지점을 찾으라는 것은 무리다 싶어 마을에서 좀 떨어진 으슥한 장소까지 모둠별로 갔다 오는 '담력시험'으로 바꾸었다.
  저녁을 먹고 정리할 동안에 각 모둠의 담력대장을 모아서 밤에 갔다 와야 할 지점까지 같이 갔다. 산모퉁이를 두어 개 돌아가자마자 허름하게 서 있는 농기계 창고의 벽에 미리 준비해간 표를 붙이고 돌아왔다. 각 모둠은 표에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돌아오면 된다.
  밤이 깊어지자 아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으고 마을에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한 편 들려주었다. 담력시험을 다녀오는 길에 꼭 지나야 하는 '애장터'에서 있었던 이야기였다. '애장터'는 옛날 보릿고개 시절 어린아이들이 죽으면 독에 담아서 묻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만들었던 '애기무덤'이 많았던 곳을 말한다.
  이야기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을까. 모두들 문을 나서는데 마음 약한 한 아이가 죽어도 못 가겠다며 울면서 다리를 뻗었다. 할 수 없이 그 아이는 마을회관 앞에서 더위를 식히며 우리를 구경하고 있던 할머니들에게 맡겼다. 
  각 모둠의 담력대장만 손전등을 가져갈 수 있는 권한을 주고는 한 모둠씩 시차를 두고 출발시켰다. 도시 아이들이라 밤길을 아주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자신만만하게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여럿이 같이 가니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비밀 무기가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아이들을 겁주려고 미리 준비한 비닐 귀신이 바로 그것이다. 비닐을 길게 자른 뒤 '애장터' 가까운 전봇대에 걸어 놓고 길다랗게 끈을 연결해 멀리서 잡아당기면 펄렁이는 모습이 꼭 귀신이 춤추는 모습과 닮은 것이다.
  아이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듯 목표지점을 향하였다. 돌아오는 모습도 위풍당당했다. 첫 모둠이 '애장터'를 통과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끈을 힘껏 당겼다. 그리고 놓았다 당겼다를 반복했다. 비닐 귀신이 춤추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보였다. 나즈막히 들려오던 이야기 소리가 끊어지고 아이들의 입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두두두둑' 뛰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몇몇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얏! 뛰어가지 마라. 너거만(너희들만) 무섭나?"
  어찌된 일인지 조금 있으니 우렁찬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무서움을 털어내려는 듯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목청껏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오고 있었다.
  "지금도 달리고 있지. 하지만 꼴찌인 것을…♬"
  첫 모둠이 노래를 부르니 멀찌감치 뒤따르던 모둠들도 영문도 모른 채 노래를 불러댔다. 노래 소리는 골짜기 골짜기를 휘돌아 메아리로 울려 퍼지며 잠들어 있던 조용한 시골의 밤을 깨웠다. 시골에서 맞은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튿날 오전에는 시골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로 실제로 쓸 수 있는 젓가락을 만들어보고, 오후에 가지고 놀 대나무 물총 만들기를 했는데 학교에서 충분히 해볼 수 없었던 활동이라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대나무를 톱으로 잘라보기도 하고 자른 나무를 세로로 쪼개며 대나무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도 아이들한테 좋은 경험이 되었다.

젓가락을 만드는데는 별다른 연모 없이 '커트칼' 하나로 충분했다. 실제 생활도구를 제 손으로 만들어보는 활동에 아이들은 매우 높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칼질을 하다가 상처가나기도 했지만 더러는 길다란 튀김 젓가락을 추가로 만들기도 하였다.
  대나무 물총 만들기는 2학년 슬기로운생활에 나오는 제재지만 실제 제 손으로 만들어본 아이는 드물다. 문방구에 가면 완제품이 세트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실제로 해보고 싶어도 쉽게 나무를 구할 수도 없고 만들 수 있는 환경도 되지 않아서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달리 대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시골에 와서 직접 만들어보면 스스로 만들었다는 데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바로 놀잇감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기쁨이 두 배인 셈이다. 
  오후가 되어 산골짜기 계곡으로 가서는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물 속 생물 관찰을 하면서 가재도 잡아보고 다슬기도 잡아본 뒤 돌아오기 전에 물총싸움을 해볼까 계획했는데 물이 보이자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이리 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물총에서 튀어나온 물줄기가 더위에 지친 하늘과 땅을 적셨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뒤늦게 두어 마리 잡은 가재와 한 줌의 다슬기는 모두 자연으로 되돌려보내고 마을로 돌아왔다. 
  밤에는 별자리 관찰을 하러 불빛이 없는 들판으로 함께 나갔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머리 위에 내려앉은 듯 가까이 다가온 은하수를 올려다보았다.
  "와, 별이 정말 많아요."
  "은하수는 처음 봐요."
  아이들은 대 자연 위에서 또 다른 대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때를 놓칠세라 평소 취미인 천체관측을 하면서 익혀두었던 별 이야기도 들려주고 큰 손전등을 비쳐가며 별자리도 찾았다. 특히 여름 밤하늘에는 우리 전통의 별자리 이야기가 많아서 좋다. 전갈자리에서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가, 거문고 자리와 독수리자리에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야기', 큰곰자리와 사수자리에는 사람의 생사를 관리한다는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에 얽힌 이야기가 숨어있다.
  고운 별빛이 마음 구석구석에 따스하게 스며들었는지 밤늦게 방안에 둘러앉아 시작한 '진실 나누기' 시간은 기대한 것보다 진지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평소에 말못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았다. 부모님 몰래 돈을 훔쳐 쓴 이야기부터 친구들을 이유 없이 괴롭힌 일, 공부에 대한 고민 등 갖가지 '진실'이 속속 비밀의 문을 열고 나왔다. 한 친구가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때문에 괴로웠던 이야기를 하며 울 때는 온 방안이 눈물 바다가 되기도 하였다. 이튿날 밤은 아침 이슬에 별빛 사라지듯 차분하게 지나갔다.

 

  마지막날은 무척 바빴다. 점심때까지 학교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짐부터 챙겼다. 우리 부모님과 마을 이장님 그리고 주변에 계시는 마을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날 일정은 지역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우리 고향은 사명대사가 태어난 곳이라 생가도 복원되어 있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유명한 비석도 있다. '표충비각'이라 불리는 비석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고 하여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표충비각'만 방문하였다. 아이들에게 사전에 비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니 무척 진지하게 둘러보았다. '표충비각' 방문을 마지막으로 우리 반 숲 속 캠프는 모두 끝이 났다.

 

  학년을 마치며 낸 문집에는 이 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방학 때 아이들과 선생님 댁에 놀러갔을 때 계곡에서 수영하고 송사리 잡고, 밤에는 야간추적놀이(담력훈련)하느라고 무서움에 덜덜 떨고, 겁없는 김민성 최우석 장광영 예기쁨이 앞장서서 노래부르고, 여자애들 옹기종기 손 꽉 잡고 시골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대나무 깎아서 젓가락 만들 때 선생님의 날쌘 손놀림이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열심히 대나무를 깎고 쉬고 있으니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옥수수를 삶아주셨는데….(송미령)

  전세 버스 타고 아이들이랑 떠들면서 집안 살림 다 가져갔을 때 그 땐 마냥 좋았는데 … 가재 잡으러 가서 돌 갈아 얼굴에 묻히던 일도, 조그만 청개구리를 잡아 개구리 접시에 담아 꽃이랑 물이랑 나뭇잎으로 집 꾸며줬던 일도,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아침에 나뭇잎 배 만들어서 내기 했던 일도, 미령이가 가다가 개똥 밟은 일도 모두 모두 6학년 가방 안에 고이 간직했다. (김민정)

 

초등학급운영3 (우리교육)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