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개
보름 전쯤 학교 뒤뜰에 버려진 개 한 마리가 축 늘어져 앉아있었다. 검은색에 털이 복슬복슬한 개였다. 얼마나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녔던지 검은 털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힘없이 구석에 쪼그려 있다가 사람 소리가 나면 일어나서 이리 저리 살펴보고는 관심 없다는 듯 낑낑거리며 다시 눕곤 하였다. 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어쩔 때는 몇 번 힘없이 짖어보기도 했지만 입에서만 맴돌 뿐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저렇게 있나 싶어서 먹던 수박을 한 조각 던져주었더니 냄새를 맡아보고는 또다시 구석으로 가서 누워버렸다. 수박을 안 좋아해서 그런 건지 먹을 마음이 없는 건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지나가던 주사님께 개가 한 마리 있다고 일러주었더니 얼른 뛰어왔다.
"그 녀석 맛있게도 생겼네. 야! 좀 있다가 솥에 물 얹어 놓을 테니 얼른 올라와."
주사님은 개고기를 즐긴다며 능청을 떨었다.
"저렇게 살도 없는 개를 어떻게 먹습니까? 저건 애완용인데."
"개고기는 어떤 개나 똑같다니까요. 저 정도면 괜찮은 편입니다."
개고기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튿날에 학교 뒤뜰을 살펴보니 그 개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떠나갔는지 주사님이 잡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 일이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인 며칠 전 이번에는 급식소 옆 주차장에 또 다른 떠돌이개가 한 마리 나타났다. 아침에 출근하는 선생님들 차들을 피해서 여기 저기 옮겨다니고 있었다.
이번에는 흰 색 털이 양털처럼 복슬복슬하게 나 있는 개였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이 '푸들'이라고 하였다. 얼마나 여기 저기를 뒹굴었던지 흰털이 누렇게 보였다. 전에 보았던 검은 개보다 더 더러워 보였다. 돌아다니는 발걸음은 검은 개보다 훨씬 날랬지만 이상하게도 낑낑거리거나 짖지를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와보니 우리 반 아이들 여남은 명이 벌써 개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칭 '미행단'인 아이들이다. 내가 점심때마다 차에 둔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데 흡연이 몸에 해롭다며 감시하러 다니는 아이들이 만든 조직이 '미행단'이다. 점심 먹고 선생님을 감시하려고 미리 나왔다가 개를 발견한 것이다.
"얘들아, 그 개 너무 더럽다. 손으로 만지지 마라."
하지만 아이들은 대꾸도 않고 개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쓰다듬고 난리였다. 그렇게 좋으면 식당에 가서 닭고기라도 하나 갖다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먹을 걸 얻어먹은 개가 또 먹을게 생기려나 싶어 눌러앉을까 걱정이 되어서이다.
"들어올 때 손 깨끗이 씻고 와라."
그렇게 일러두고는 학년 연구실로 올라왔다.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바깥을 보더니 나를 불렀다. 창 밖을 보니 우리 반 아이들 한 무더기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개를 안고 앞서 가고 '미행단' 아이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어디 가노?"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쳤더니 한 아이가 대답을 했다.
"절에 가요. 개를 절에 갖다 주려고요."
학교 바로 뒤에는 '성덕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아이들은 절에 개를 갖다 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같다.
"얼른 갖다 놓고 내려와라. 수업 시간이 다 됐잖아!"
그 때문에 5교시 수업이 늦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온 아이들은 스님이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절 앞 연못가에 그냥 두고 왔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시 산으로 몰려갔다. 스님이 없어서 개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튿날 아이들 말을 들으니 가관이다. 절에 가니 개가 그대로 있어서 몇몇 아이들이 개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이 개는 다른 병원에 가야 치료할 수 있겠어."
30분이나 기다려서 어렵게 만난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는 것이다.
병원을 나섰지만 학원에 가야할 시간도 다 됐고 해서 근처에 있는 파출소로 갔다. 개 주인을 찾아주려는 마음에서다.
"이런 개는 그냥 길가에 두면 집에 찾아간다."
파출소 직원의 말에 할 수 없이 한 남자애가 개를 데리고 가서 자기 집 앞에 두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저녁 무렵 어떤 할머니가 개를 데리고 가더라는 것이다.
불쌍하고 힘없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 아이들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좋은 일을 했구나. 아마 그 개는 할머니가 잘 키우실거야."
이 정도로 떠돌이 개 사건이 마무리 된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가 이 아이들 만할 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가 생각난다. 나랑 무척이나 잘 지내던 누렁이가 어느 날 꽤나 거리가 떨어진 아랫동네로 팔려간 일이 있었다. 그 집에 아픈 사람이 있었는데 개고기가 좋다고 해서 약으로 쓰려고 했다고 들었다. 당연히 나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대문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한참 들리는 것이 아닌가. 꿈인 줄 알고 그냥 누워있었는데 짖는 소리가 무척 귀에 익었다. 바로 우리 누렁이였다.
얼른 뛰어나가 문을 열었더니 진짜 우리 누렁이가 내 품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도망쳐 온 것이다. 집까지 찾아온 게 신기했고 반가웠다.
아침을 먹고 좀 있으니 아랫마을 사람이 찾아와서 결국 누렁이는 다시 잡혀갔다. 그 때의 아픔을 아직 잊지 못한다.
새삼 반 아이들이 그 때 내 모습 같아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학교 뒤뜰을 헤매던 떠돌이개를 지키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참 예쁘다. (2004.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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