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학급문집은?
교직 16년차인 내게 문집은 연인처럼 함께해왔다. 전담을 했던 한 해를 제외하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두 권의 문집을 만들어왔다. 무슨 까닭일까. 어떤 사람은 바쁜 하루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먹어야 제대로 하루를 보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내게 문집은 그런 맥주 같은 것이다. 아이들과 일년살이를 마칠 때 문집을 만들지 않고 지나가면 무척 서운할 것 같다. 또 일년살이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 없을 것 같다.
문집을 내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꾸준히 글을 쓴다. 학급 일기를 쓰고, 집이나 학교에서 생활문을 쓴다. 말하기듣기쓰기 수업을 준비할 때도 언제나 '이 공부를 할 때 어떤 글쓰기가 가능할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반 문집에는 생활문과 교과수업시간에 공부하면서 쓴 글들이 많은 편이다.
우리반 문집이 가진 가장 큰 흠은 일기와 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흔히 글쓰기의 기본은 일기쓰기와 시쓰기라고 한다. 하지만 일기는 내게 참 민감한 분야다. 무엇보다 일기는 개인의 생활습관이나 신념에 따라 쓰는 글이지 교사가 검사하라고 말할 까닭이 없다고 판단했다. 글쓰기 지도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따로 시간을 내어 생활문을 쓰게 하고 지도하는 편이 마음 편했다. 시는 참 애닯게 느껴지는 분야다. 무척 매력이 있지만 따로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6학년 쓰기 시간에 시를 쓰는 공부거리가 없는 것도 한 몫 했다. 중학년이나 저학년을 맡으면 꼭 해볼 참이다.
언제나 겪는 일이지만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싫은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기술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쓴 글을 실감나게 읽어주는 것이다. 바로 옆에 앉은 친구가 쓴 글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순간 서로의 마음이 소통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아이들 서로간에 또 나와 아이들간에 생각과 느낌이 통하는 그 순간이 이런 문집을 만들게 했던 힘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문집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내 문집이 나를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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