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4월 21일 - 정훈이의 두려움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4:58

 

4월 21일

정훈이의 두려움


  체육시간에 도전활동을 했다. 아이들을 두 편으로 나눈 뒤 각각 훌라우프 빠져나오기, 고리던지기, 허들 아래로 지나가기, 훌라우프 징검다리 건너기 , 고깔 돌아오기 이런 차례로 한 사람씩 돌아오게 했다.

  개똥이편과 소똥이편으로 나눠 경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개똥이편이 빨랐다.(앞섰다.)그런데 다시 소똥이편이 이기는 가 싶더니 정훈이 차례에서 그만 소똥이편으로 완전히 순위가 굳어버렸다. (아주 뒤집히고 말았다.)

  정훈이도 훌라우프 빠져나오기와 고리던지기 그리고 허들 아래로 지나가기까지는 잘 했다. 그런데 훌라우프 징검다리에서 그만 멈춰서 버렸다. 개똥이편은 난리가 났다.

  "정훈아, 뭐하노?"

  "빨리 지나가라."

  아이들 소리에 놀랐는지 정훈이가 징검다리를 뛰어서 건넜다. 이제 고깔만 돌아오면 됐다. 하지만 정훈이는 그 자리에 다시 멈춰서버렸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길 잃은 아이 같았다.

  소똥이편 선수는 이미 고깔을 돌아서 자기편으로 뛰어갔다. 개똥이편 아이들은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질러댔다.

  "정훈아, 빨리 가라."

  "뛰어라, 얼른."

  하지만 정훈이는 멍하니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보다 못해 내가 뛰어가서 팔을 붙잡고 끌어주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정훈이는 고깔을 돌더니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뛰어왔다.

  정훈이가 자기 자리로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두 아이 빼놓고는 모두들 정훈이를 격려하고 있었다.

  "정훈아 잘 했다."

  "괜찮다 정훈아."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늦게 온 데다 생글생글 웃는 표정을 보고 화를 낼 만 했지만 아이들은 너그러이 받아주었다. 수업시간에 정훈이가 할 일을 늦게 한다고 야단을 많이 하는 나와는 달랐다. 

  "정훈아, 아까 체육 시간에 왜 멈춰서 있었노?"

  급식시간에 일부러 정훈이를 옆에 앉히고 물어보았다. 정훈이는 대여섯 살짜리 아이 같은 말투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있잖아요. 앞만 보고 뛰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안 보여서요."

  "겁이 났단 말이야?"

  "무서워서요."

  조금 황당했지만 솔직한 답이었다. 여태까지 지켜본 정훈이는 마음이 늘 불안하고 겁이 많은 편이었다.

  뛰다가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졌던 정훈이를 이해하고 격려해준 아이들이 참 고맙다. 아이들에게 크게 배웠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보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173호(2010년 7월호)에 실음.

*빨간색글 --> 파란색 글로 바꿈 (2010년 7월 7일)

*2012년 9월 16일 다시 고침(아래)

 

  체육 시간에 도전 활동을 했다. 아이들을 개똥이 편, 소똥이 편으로 나눈 뒤 훌라후프 빠져나오기, 고리 던지기, 허들 아래로 지나가기, 훌라후프 징검다리 건너기, 고깔 돌아오기 이런 차례로 한 사람씩 돌아오게 했다.

  처음에는 개똥이 편이 앞섰다. 그런데 소똥이 편이 힘을 내어 따라잡나 싶더니 마지막 차례에서 그만 소똥이 편으로 아주 뒤집히고 말았다. 개똥이 편의 마지막 선수는 정훈이였다.

  정훈이도 훌라후프 빠져나오기와 고리던지기 그리고 허들 지나가기까지는 잘 했다. 그런데 훌라후프 징검다리에서 그만 멈춰서 버렸다.

  정훈이는 훌라우프 안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디일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우두커니 서 있자 개똥이 편은 난리가 났다.

  “정훈아, 뭐 하노?”

  “빨리 지나가라.”

  아이들 소리에 놀랐는지 정훈이가 징검다리를 뛰어서 건넜다. 이제 고깔만 돌아오면 됐다. 하지만 정훈이는 다시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그리고는 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길 잃은 아이 같았다.

  소똥이 편 선수는 이미 고깔을 돌아서 자기편으로 뛰어갔다. 소똥이 편 아이들은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개똥이 편 아이들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질러 댔다.

  “정훈아, 빨리 가라.”

  “뛰어라, 얼른.”

  하지만 정훈이는 멍하니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보다 못해 내가 뛰어가서 팔을 붙잡고 끌어 주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정훈이는 고깔을 돌더니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뛰어왔다.

  정훈이가 자기 자리로 들어가자 개똥이 편 아이들이 정훈이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생길까봐 나도 정훈이에게 갔다. 아이들이 정훈이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정훈아 잘했다.”

  “괜찮다 정훈아.”

  내 예상과 달리 승부욕이 강한 한두 아이 빼놓고는 모두들 정훈이를 격려하고 있었다. 늦게 와서 시합이 뒤집어진데다 들어오며 능청스럽게 웃는 표정을 보고 화를 낼 만 했지만 아이들은 너그러이 받아 주었다. 공부시간에 정훈이가 할 일을 늦게 한다고 야단을 많이 하는 나와는 달랐다.

  급식 시간에 일부러 정훈이를 옆에 앉히고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에 관해 물어보았다.

  “정훈아, 아까 왜 멈춰서 있었노?”

  정훈이는 평소처럼 대여섯 살짜리 아이 말투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있잖아요. 앞만 보고 뛰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안 보여서요.”

  “겁이 났단 말이야?”

  “무서워서요.”

  조금 황당했지만 솔직한 답이었다. 여태까지 지켜본 정훈이는 마음이 늘 불안하고 겁이 많은 편이었다.

  뛰다가 마음이 갑자기 불안해졌던 정훈이를 이해하고 격려해 준 아이들이 참 고맙다. 3학년 아이들에게 크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