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선생님 먼저 잘 하세요!
출근길에 조금 정신이 없었다. 차가 고장나서 서비스센터에 맡기고 택시를 잡으려는데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이미 출근 시간은 넘어섰다. 게다가 오늘은 울산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라 마음이 급했다.
겨우 택시를 잡아 타고 학교에 오니 출발 10분 전이었다. 운동장에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헐레벌떡 교실로 뛰어 들어오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었지만 다행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나오려는데 옆반 선생님이 며칠 전에 나눠 준 설문지 내고 가라고 했다. 오늘까지 내야 된다고 했다. 낸 아이들 숫자를 세어보니 스무 명이었다. 여섯 명이나 내지 않았다.
"우리 반은 다 가져왔는데 이 반은 왜 이리 많이 안 냈노?"
옆반 선생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은근히 화가 났다. 안 낸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한바탕 잔소리를 했더니 은서가 따졌다.
"선생님이 금요일까지 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아직 설문지를 집으로 가지고 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화가 더 났다.
"내가 언제 금요일까지 가지고 오라고 했노? 화요일에 가져오고, 안 되면 목요일까지 가져오라고 했지."
옆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내 말이 맞다고 하자 은서가 한 발 물러섰다. 옆반 선생님이 이 모습을 보고 딱하다고 생각했는지 낸 거라도 주고 가자고 했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면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설문지 안 낸 아이들은 차에 안 태운다고 엄포를 놓고 내일 꼭 가져온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태웠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담임을 하는 반은 학교에 낼 것이 있을 때 안 내는 아이가 많거나 늦게 내는 편이다. 이런 일로 다른 선생님들한테 눈총을 받으면 꼭 아이들을 먼저 탓한다. 나쁜 버릇이다.
한 발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아이들 잘못은 적다. 부모님이 집에 없거나 늦게 들어와서 못할 때도 있고, 있더라도 바빠서 못 할 수도 있다. 또 일이 있어서 식구들끼리 어딜 다녀오면 할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잊고 안 내는 아이가 한두 명은 있겠지만 이건 어떤 반을 맡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야단치기 전에 아이들 사정을 하나하나 들어보는 게 좋다. 이걸 알면서도 당장 급하다고 또 화가 난다고 오늘도 먼저 아이들에게 야단을 쳤으니 나도 어지간히 못된 선생이다.
사실 무엇을 잊어버리기로는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심하지 않은가. 오늘만 해도 세 가지나 잊었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이 쓸 필기구도 안 챙겼고, 간식 사 줄 학교카드도 가져가지 않았다. 또 학교 도착해서는 버스에 도시락통을 그대로 두고 내렸다. 그래서 버스 기사님이 택시로 도시락통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고도 아이들 탓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아이들이 야단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생님이 먼저 잊지 마시고요. 그 다음에는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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