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귀신 이야기 해주세요!
지난주에 아이들에게 들려주다가 중간에 끊은 귀신 이야기가 한 편 있다. 한참 진지하게 들려주고 있는데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 다 못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그만 둔 탓에 아이들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귀신 이야기 해주세요!"
틈만 나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송장! 송장! 송장!"
하며 합창을 한다. 그 때마다
"알았다. 들려줄게."
라고 말한 게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재미있는 내용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일주일 동안 속이 타도록 기다린 것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난리였다. 쉬는 시간, 수업 시간 가리지 않았다.
"송장이 선비한테 뭐라 말했는데요? 그 부분만 얘기해주세요. 제발요."
"선생님은 왜 약속을 안 지키세요? 혹시 뒷이야기를 모르는 거 아녜요?"
늘 주장이 많은 민서는 물론이고 평소에 말이 적은 구완이도 거들고 나섰다. 이야기에 목매는 아이들을 보니 이야기 한 편 가지고 너무 질질 끌었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마음 푹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하지만 지난 오월에 행사가 많다 보니 진도가 너무 늦어버렸다. 유월에도 지방선거, 환경체험학습, 환경학예행사가 줄을 잇는다. 아무리 행사를 많이 해도 기말고사는 예정대로 치르기 때문에 한 시간도 여유가 없다.
게다가 수업 시간이라고 해서 진도만 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숙제, 일기, 학습일기, GPS 책을 점검해야 되고, 단원평가나 수행평가도 치러야 한다. 이름표 달아라, 복도에서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 교과서 가져와라, 칠판 봐라, 잡담 하지 마라, 청소는 하고 가라, 우유 좀 마셔라 같은 잔소리도 해야 한다. 이런 걸 다 하기에 40분은 너무 짧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까지 앉혀놓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변명이 너무 길었다. 어쨌든 오늘은 꼭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못했다. 과학 시간에는 자투리 시간을 만들었지만 자리 바꾸기를 했다. 특활 시간에는 GPS 책 기록하느라 못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다. 진도 걱정 한다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그깟 이야기도 못해주나 싶었다. 시간이 나면, 여유가 있으면 해준다는 생각 보다는 아이들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얘들아, 재미없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어주는 너희들이 참 고맙다. 이번 주가 가기 전에 꼭 나머지를 들려줄게. 그런데 설마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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