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현충일 국기달기
둘째 시간에 팝업이 왔다.
‘국기 게양 학생 수 보내주세요.’
현충일인 어제 가정에서 국기를 얼마나 달았는지 조사해서 숫자를 보내달라는 뜻이다. 아마 교장선생님의 지시로 보낸 듯 했다.
아침 방송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어제가 현충일이었던 걸 아는지, 국기를 달았는지 묻고 애국은 어떻게 하는 건지에 관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각 반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 지 조사하라고 한 모양이다.
조사해보니 국기를 단 아이가 서너 명 밖에 안 된다. 마침 어제가 일요일이어서 현충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아이가 많았다. 게다가 열네 명은 집에 국기가 없다고 한다.
걱정이 됐다. 숫자를 그대로 보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거짓으로 부풀려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 옆 반 선생님께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고민하다가 아이들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어제 국기 단 사람 몇 명 안 되지? 그런데 국기 단 사람 숫자를 보내야 해. 만약 이대로 보내면 교장 선생님께 혼 날거야. 제헌절이나 광복절에 잘 달기로 하고 앞으로 달사람 숫자를 보내도 될까?”
질문이 끝나기가 바쁘게 여러 대답이 나왔다. 의견이 갈린 듯 했지만 가장 많은 대답은
“그대로 보내세요.”
였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되죠.”
라고 따끔하게 지적을 해주며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럼 우리 반이 야단맞아도 좋아?”
하고 물으니 한목소리로
“예.”
라고 한다. 아이들 말이 다 맞지만 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도 어제 국기 다는 걸 깜빡 잊었다. 울산에서 모임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선 탓이다. 우리 집은 국기 다는 걸 거의 빼먹지 않는데도 어제는 일요일과 겹쳐서 더욱 생각을 못했다.
내가 먼저 국기를 달고 아이들 앞에 떳떳해야 잔소리라도 할 텐데 그럴 수 없어서 답답하다. 또 내 마음도 몰라주고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만 외치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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