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숙제
점심 먹고 교실로 올라오는데 한 아이가 지나가면서 한숨을 푹 쉬고 가기에 까닭을 물어보았다.
“왜 그러니?”
그 아이는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답했다.
“숙제가 많아서요.”
문득 그 아이 등에 짊어진 가방이 무거워 보였다.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오늘 장에서 다 못 판 짊을 짊어지고 다음 장으로 걸어가는 옛날 장꾼 같았다.
“무슨 숙제가 그리 많노?”
“학교 숙제도 많고 학원 숙제도 많아서요.”
“힘들겠구나.”
“…….”
말없이 털레털레 계단을 내려가는 그 아이를 보며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힘들겠지만 이겨내고 열심히 해라고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었다.
이 아이를 보며 오전에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회 시간에 지난주 금요일에 내 준 숙제를 검사해보았다. 주제는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자랑거리 열 가지 조사해오기’였다.
검사해보니 숙제를 해 온 아이가 절반이 되지 않았다. 스물여섯 명 가운데 숙제를 해온 아이가 열두 명, 안 해온 아이가 열네 명이었다. 숙제를 해온 아이 가운데에도 고장의 자랑거리에 설명까지 붙여온 아이는 다섯 명 뿐이었고 나머지 일곱 명은 이름만 써왔다. 그래서 화를 내며 아이들에게 5분 동안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있도록 했다.
숙제에 관한 두 가지 일을 겪으며 내 속에 있는 두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반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왔다고 화를 내면서도 숙제가 많아 힘겨워 하는 아이를 가엾게 여기는 두 마음 말이다. 마치 집에서는 딸아이가 저녁 내내 숙제한다고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며 담임선생님을 원망하면서도 학교에서는 반 아이들에게 숙제를 척척 내는 것과 같다.
숙제는 예습이나 복습, 수업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늘 숙제가 많다고 불평하고, 교사들은 늘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온다고 불만이다. 언제쯤이면 이 줄다리기가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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