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목요일 장마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 비는 내리지 않고 텁텁하다.
기말고사 교실 풍경
첫째 시간에 국어시험을 보다가 정훈이가 물었다.
“선생님, 유래가 뭐예요?”
초대장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 아닌 것을 찾는 문제에 나온 낱말이었다. 이 문제에는 시간, 장소, 내용, 찾아오는 길, 유래 이렇게 다섯 가지 보기가 있다. 답이 바로 유래인데다 사회 시간에 ‘고장의 발자취’를 배울 때 여러 번 나온 단어라서 말해주지 않았다.
십 분쯤 지났을까. 찬기도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동정심이 뭐예요?”
문제지를 보니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의 성격을 묻는 문제에 이 낱말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동정심이 뭔지 몰라도 풀 수 있는 쉬운 문제였다. 하지만 교과서로 다루지 않은 낱말이라서 뜻을 일러주었다.
“동정심이란 남을 가엾게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말해놓고 보니 정훈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답답한 마음에 물었을 텐데 정훈이한테만 가르쳐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훈이는 아랑곳 않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험을 쉽게 낸 탓인지 십여 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몇몇 아이들은 다 풀었다고 했다.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뒤에 수인이가 물었다.
“동정심이 뭐예요?”
수인이는 찬기가 질문했을 때 설명을 듣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같은 질문을 연거푸 받으니 오늘이 시험 날이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조금 전에 선생님이 얘기했잖아.”
“그거 몰라도 답 알 수 있는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찬기와 미경이가 차례로 수인이에게 말했다.
“맞아. 또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미경이 말처럼 그 말뜻을 몰라도 답 알 수 있으니까 찾아봐라.”
내 말에 수인이도 알겠다며 다시 풀어나갔다.
아이들을 둘러보니 대략 네 명 가운데 세 명은 문제를 다 풀고 앉아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을 위해 조용히 기다리자고 했다.
삼사 분쯤 뒤에 정훈이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동정심이 뭐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칠판에 ‘동정심’이라고 크게 써놓고
“이거 보세요. 동정심이란 남을 가엾게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입니다.”
하고 말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험 날에 그렇게 했다간 다른 반으로부터 오해 받기 아주 좋다. 그래서 미경이가 했던 말을 정훈이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정훈아, 그거 몰라도 답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찾아봐.”
정훈이를 끝으로 질문은 더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다 풀었다고 해서 조금 일찍 시험지를 걷었다.
시험 날 교실에는 연필 소리만 들리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특히나 어려운 낱말이 나오면 오늘 같은 일이 흔히 벌어진다. 어려운 낱말을 넣어 문제를 낸 교사가 잘못인지,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들 잘못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동정심’이란 말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내가 낸 과목이라서 더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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