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6월 29일 - 시험지 푸는 날

늙은어린왕자 2010. 6. 30. 16:47

6월 29일 화요일 하늘에 장마구름이 가득하다

시험지 푸는 날


  모레가 기말고사 시험 날이다. 시험이 다가오면 한 열흘 전부터 아주 바쁘다. 시험범위에 맞춰 밀린 진도도 나가야 하고 예상문제를 복사해서 아이들과 함께 풀이도 해야 한다.

  특히 기말고사는 네 과목만 봤던 중간고사와 달리 전 과목을 본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같은 지식과목은 늘 책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다. 하지만 미술, 체육, 음악처럼 실기 위주로 수업하던 과목은 일부러 이론 공부를 해야 마음을 놓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예상문제지를 풀이하느라 바빴다. 여섯 시간 중 네 시간이나 문제 풀이를 했다.

  “또 시험지에요?”

  문제지를 나눠줄 때마다 몇몇 아이들이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심히 풀고 매겼다.

  “여기 있는 문제 중에서 몇 문제가 시험에 나올지 몰라요. 그러니까 열심히 봐야 돼요. 이 문제지에서 몇 개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만약에 이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어떻게 답할까를 생각해야 돼요.”

  아이들이 지겨워할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말도 했다. 시험에 꼭 나올 듯한 문제를 만나면 따로 설명을 덧붙였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왜 그랬는지 짐작했을 것이다.

  시험지를 풀이하다가 느낀 것이지만 아이들 성적은 대부분 집중력에서 갈린다. 집중력은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보는 힘이다. 교사가 설명할 때 또는 무엇을 보여줄 때 딴 생각하지 않고 듣거나 보는 태도만 되어 있어도 성적은 올라간다.

  오늘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과학 시간에 구름에 관해 공부할 때 텔레비전으로 중요한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 때 잠시 화면을 거꾸로 돌려놓고 잘 보고 있던 아이 한 명과 잘 보지 않던 아이 한 명을 불렀다. 두 아이에게 방금 화면에서 ○○은 어떻게 기호로 나타냈는지 칠판에 그려보라고 했다.

  결과는 뻔했다. 안 보고 있던 아이는 못 그린 반면 보고 있던 아이는 손쉽게 그렸다. 잘 그린 아이에게는 ‘100점’을, 못 그린 아이에게는 ‘20점’을 써놓고 이야기했다.

  “보세요. 만약 이게 시험이었다면 한 쪽은 100점, 한 쪽은 20점 밖에 못 받았을 거예요. 100점 받은 아이가 머리가 특별히 뛰어납니까? 아니지요. 20점 받은 아이도 머리가 나빠서 20점이 된 게 아닙니다. 이렇게 된 건 무엇을 잘 보고 안 보고의 차이지요. 여러분 기말고사 성적도 똑같습니다.”

  집중하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정보가 많은 아이는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사실 이게 쉽지 않다. 특히나 삼 학년들은 아직 머리 보다는 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하지만 지금부터 집중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영영 그런 힘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하루 종일 문제지와 씨름하느라 아이들도 지치고 나도 지치던 마지막 시간에 예상치 못한 멋진 선물이 왔다. 미경이 어머니가 보내주신 아이스크림이 한 가방 들어온 것이다. 시험지 나눠준다고 짜증내던 목소리는 쏙 들어가고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는 소리만 교실에 가득했다. 축구에서 꼭 필요할 때 한 골 넣어주는 선수처럼 시험지 때문에 짜증이 최고로 올라갈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배달해주신 미경이 어머니가 너무 고마웠다. (나중에 들어보니 미경이가 아이스크림 넣어달라고 엄마를 졸랐다는데 오히려 미경이한테 고마워해야 되겠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