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금요일 장맛비가 장맛비처럼 내림
식탁에서 나눈 이야기
급식소에서 밥을 먹으며 함께 앉은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나와 함께 한 아이는 수민이, 동협이, 시현이, 정훈이, 한별이 이렇게 남학생 다섯 명이다.
먼저 수민이한테 물었다.
“수민아, 너희 아빠 몇 살이셔?”
“서른여섯요.”
“그럼 엄마는 서른 셋?”
“엄마는 서른일곱인데요.”
“아니, 그럼 엄마가 연상이네?”
“네.”
부모님 나이는 가정환경조사서에서 보고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물어본 것이다.
“그러면 엄마가 연상이니까 무슨 일이 있을 때 엄마가 아빠보고 ‘남편! 이거 좀 해줄래?’ 이렇게 말하고 아빠는 ‘부인님, 이거 좀 해주실래요?’ 이렇게 말하겠네?”
“아닌데요. 집에서는 그냥 같은 나이로 하는데요.”
수민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엄마가 한 살 더 많다고 했잖아.”
“그런데 집에서는 똑같이 각자 할 일을 알아서 해요.”
수민이는 뭐 그리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느냐는 듯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대화가 어색하다 싶었는데 마침 정훈이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이번 방학 때는 숙제 하나도 안 할 거예요. 일기만 쓸 거예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아무 것도 안 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일기라도 써온다니 말이다.
“정훈아, 진짜 니가 일기를 잘 써온다면 아무 숙제도 안 내줄게.”
“할 수 있어요.”
“좋아. 믿어도 되는 거지?”
“네.”
정말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 아니,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학기에 정훈이한테 들었던 말 가운데 가장 값진 소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듣고 있던 동협이도 귀가 솔깃했던지 끼어들었다.
“저도 일기만 쓰고 싶어요.”
“안 돼.”
내가 잘라 말하자 동협이 눈이 동그래졌다.
“정훈이는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넌 안돼.”
“왜요?”
“내 생각에 동협이는 이번 방학 때 수학 공부를 좀 더해야겠어. 일기도 쓰고 수학공부도 해야 돼.”
“그럼 다른 숙제는 안 해도 되는 거죠. 수학 할래요.”
“알았다.”
동협이는 아주 만족스런 표정이다. 하지만 나도 아주 만족스럽다. 일기에다 수학까지 해오면 더 무엇을 바랄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시현이와 한별이는 가끔 고개만 돌릴 뿐 말없이 밥만 먹고 있었다. 먼저 시현이한테 말을 걸었다.
“시현아, 어제 오후에 어디 가는 길이었노?”
어제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삼계로 가다가 해반천에서 시현이네 식구들을 보았다. 그 이야기다.
“운동하고 있었는데요.”
“거기서 무슨 운동을 하노?”
“걷기 운동요.”
시현이는 대답을 짧게 끊어서 했다. 표정 변화도 없고 뭔가 귀찮다는 느낌이다.
“너희 엄마가 내 봤다 이야기 안 하시더나?”
“네.”
“진짜 안했다구?”
“했어요.”
“뭐라든?”
“그냥 봤다고 하던데요.”
내가 바라던 대답은 ‘너희 선생님 자전거 타는 선수 같더라. 멋있더라.’ 이런 건데 시현이 말로는 그런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시현이는 이야기 나누는 데는 관심이 없고 아까 보던 만화책을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시현이를 보내고 혼자 남은 한별이를 가까이 오게 했다. 한별이는 편식이 심하다. 특히 콩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도 오늘은 콩이 없어서 밥은 거의 다 비웠다.
“한별아, 요즘 다리 괞찮나?”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더노?”
“그냥 물리치료만 받는데요.”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했을 거 아냐.”
“…….”
한별이 말은 상담은 어머니가 하고 자신은 물리치료만 받아서 모르겠다는 뜻인 듯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보조기기 뗐나?”
“네. 저 뛸 수 있어요.”
“그래도 조심해야 할 텐데.”
“저번에도 운동장에서 뛰었어요.”
이 말을 하며 한별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입술과 코 사이가 더 붉어졌다. 그 동안 다리가 불편해서 체육도 전혀 못했는데 이제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제 곧 방학이어서 2학기가 되면 같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별이를 끝으로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급식소 안에는 4학년 몇 명만 남아 있고 모두 갔다. 요일마다 아이들을 나눠놓은 덕분에 밥도 같이 먹고 억지로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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