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9월 17일 - 선생님 배고파요

늙은어린왕자 2010. 9. 17. 18:52

9월 17일 금요일 맑음

선생님 배고파요

 

  5교시 과학시간에 배고프다고 하소연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구나 싶어서 무시하고 가려는데 자꾸 목멘 소리가 나왔다.

  “선생님, 배고파요.”

  “힘이 없어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뭔 배가 그렇게 고플까. 다들 아침 안 먹었나?” 

  “예!”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정말? 그럼 아침 안 먹은 사람 손 들어보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세어보니 열한 명이었다. 스물여섯 명 가운데 열한 명이나 아침밥을 안 먹고 왔다니 놀라웠다. 사실이라면 이 시간에 배고픈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왜 밥을 안 먹고 왔을까.

  “늦잠을 자서요.”

  “엄마가 못 일어났어요.”

  “우린 원래 아침 안 먹어요.”

  까닭이 가지가지였다. 어쨌거나 아침 밥 안 먹고 온 아이가 많아서 너무 놀랐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배고픔을 어떻게 참았을까 싶었다.

  한 가지 미안한 일이 생각났다. 아침활동 시간에 옆 반 선생님이 빵 두 조각을 가져왔다. 나는 아침을 먹긴 하지만 뱃살 관리하느라 요즘은 조금씩 먹는다. 오늘따라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그 빵을 먹었다. 이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은서가 물었다.

  “우리도 맛있는 거 가져와서 먹어도 돼요?”

  이 말이 내 귀에는 ‘우리도 선생님처럼 군것질해도 돼요?’로 들렸다. 은서가 당연히 아침밥을 먹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 된다. 이거 아침밥이거든.”

  “우리도 아침 안 먹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우리처럼 아무 것도 드시지 마세요.”

  “그건 좀 이상한걸. 내가 왜 똑같이 해야 되니? 너희들이 숙제하면 나도 숙제해야 돼?”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고는 보란 듯이 빵을 다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아침밥을 안 먹고 온 아이한테 심했던 것 같다. 빵을 얻었더라도 아이들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조용히 먹든지 아니면 아예 먹지 않았어야 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아침밥을 먹어야 뇌 활동이 활발해져서 공부를 더 잘하게 된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공부도 공부지만 최소한 수업 시간에 허덕이는 아이들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늦잠 자는 아이는 습관을 바꾸고, 편식하는 아이는 억지로라도 고치고, 아침을 거르는 가정에서는 문화를 바꾸어서라도 모두 아침밥을 먹고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