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금요일 구름 조금
애장터 아기 귀신
1학기 특별활동 시간에 들려주다가 중간에 그만 둔 귀신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느긋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서 뒷이야기를 못한 채 방학을 맞고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요즘도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마저 들려달라고 조른다. 속으로는 빨리 해주어야지 하면서도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보니 늘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데 2학기 수업 계획표를 보니 앞으로는 특별활동 시간을 거의 가지기 힘들게 됐다. 국어와 수학 교과 시간이 부족해서 특별활동 시간에도 이런 교과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특별활동 시간은 즐거운 놀이도 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하는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의 아쉬움이 클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귀신이야기를 한 가지 들려줄까 한다.
밀양에 있는 우리 고향에는 ‘애장터’라는 곳이 있어. 지금은 나무와 잡풀로 뒤덮여 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여기 저기 돌무더기가 널려있는 곳이었지.
돌무더기들은 대부분 어릴 때 죽은 아이들 무덤이었어. 몇 십 년 전만 해도 굶거나 병들어 죽는 아이들이 많았거든. 아이가 죽으면 거적에 싸거나 옹기에 넣어서 땅에 묻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대.
그런데 언제부턴가 애장터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났어. 해질녘이나 캄캄한 밤이면 아기들이 슬프게 운다는 거야.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그 곳을 지나가기를 꺼렸어.
“으앵 으앵 으아아앙.”
“엄마. 어어엉. 엄마. 엉 어엉.”
생각해봐. 밤길을 가는데 이런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래서 사람들은 밤이 되면 애장터 앞을 지나가지 않고 먼 논길을 돌아다니곤 했단다.
나는 초등학생이라 아침에 학교 갔다가 오후에 돌아왔으니까 당연히 그 소리를 못 들었지. 그래도 무서워서 늘 친구들과 함께 오갔어. 지나갈 땐 땅만 보고 걷거나 반대편 산을 보고 걸었지. 애장터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어. 돌무더기에서 죽은 아기 귀신이 기어 나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마침 장날이라 친구 엄마가 십 리 밖에 있는 장에 다녀오던 길이었어. 그 때는 길도 좁고 차도 없어서 모두 걸어 다니던 시절이야. 당연히 장에도 걸어갔다 왔지.
그날따라 볼 장이 많아서 짐을 잔뜩 이고 지고 오는데 그만 날이 어두워져버린 거야. 마을에 전기가 없으니 사방이 깜깜해. 달이라도 있으면 훤해서 다니기가 수월한데 그 날은 달도 없어서 별빛만 바라보고 걸어야 했대.
애장터에 다다랐을 무렵 엄마는 무서움을 느꼈어. 혼자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밥을 굶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걸었대. 등 뒤에는 식은땀이 마구 흐르고 손발이 떨렸어. 무거운 짐을 든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엄마는 앞만 보고 걸었지.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 새 애장터를 거의 다 지나왔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애장터를 지나간다. 조금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며 걷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어.
“어엄마~ 엉 어엉.”
잘못 들었나 싶어 발걸음을 죽이며 다시 들었어.
“엄마~어 엄마 엉 어엉 엄마아아아.”
엄마는 깜짝 놀랐어. 가만히 들어보니 분명히 막내 울음소리였거든. 엄마는 걸음을 멈추었어. 그러자 아기 울음소리도 멈추더래.
‘우리 아가가 엄마 찾아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냐. 이건 분명히 아기 귀신 울음소리야. 우리 아가가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어.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귀신한테 홀려 죽는다고 했어.’
엄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어. 그런데 다시 등 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엄마~앙 어엉 어엉 엄마아아아.”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엄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분명히 우리 아가 울음소리가 맞아. 저 어린 걸 그냥 두고 갈 순 없어.’
엄마는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아기한테 뛰어가려고 했어.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서 또 이런 생각이 들었대.
‘이건 귀신 장난이야. 우리 아기가 절대 여기까지 왔을 리 없어.’
엄마는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어. 그러자 또 막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
엄마는 슬펐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 했어.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등 뒤에서는 더 큰 울음소리가 들려왔대. 마치 엄마를 따라오는 것처럼 말야.
집에 들어온 엄마는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어. 마음속에는 온통 걱정뿐이었거든.
‘그 울음소리가 우리 아가가 맞으면 어떻게 하지? 우리 아가를 그 깜깜하고 무서운 곳에 두고 왔으면 어떻게 하지?’
엄마는 두려운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어. 캄캄한 방 안에는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이 자고 있었어.
“우리 아가 어딨어?”
급한 마음에 방 안을 손으로 더듬었어. 그리고 방 안쪽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를 찾았어. 호롱불을 켜고 얼굴을 살펴보니 분명히 막내 아기인거야.
엄마는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지. 만약 엄마가 애장터에서 뒤돌아보고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 일이 있고난 뒤 사람들은 애장터에서 소리가 나도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대. 지금도 나는 그 곳을 지나갈 때면 먼 산을 보거나 앞만 보고 걸어가. 왜냐면 그 아기 귀신들이 아직 거기에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거짓말 같다구? 그런 사람 있으면 언제라도 나랑 같이 그 곳에 가보자. 사람들은 뭐든지 직접 보기 전에는 믿지 않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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