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1월 15일 - 들이 조사

늙은어린왕자 2010. 11. 15. 18:05

11월 15일 월요일 구름한 점 없이 맑고 추운 날

들이 조사


  지난 주 화요일에 내준 수학숙제 검사를 해보니 스물여섯 명 가운데 열다섯 명이 해왔다. 지난 번 사회 숙제보다 두 명 더 많이 해 와서 부족하지만 나아졌다.

  숙제는 ‘슈퍼마켓이나 마트에 가서 들이가 표시된 물품 조사하기’였다. 음료나 우유처럼 들이 단위로 파는 물품을 조사해보며 들이 개념을 생활 속에서 느끼게 하려고 이 숙제를 냈다. 아이들이 조사해온 내용을 살펴보니 흔히 쓰는 우유에서 물, 음식재료용기, 양철 그릇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숙제검사는 우선 눈으로 확인하고, 조사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했다. 먼저 구완이가 발표했다.

  “두유가 원래 200ml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조사해보니까 210mm였어요.”

  구완이 말을 듣고 정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 반에서 먹는 두유는 모두 200mL인데 어찌된 거지?”

  “이거는 병에 든 건데요.”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병에 든 두유는 팩 보다 양이 조금 더 많다니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규리다.

  “종류가 다르면 양도 다를 줄 알았는데 큰 우유는 다 1L였어요. 그런데 같은 1L라도 가격은 달랐어요. 유기농 우유는 5300원이고 일반우유는 3980원이었어요.”

  규리는 들이 조사를 하면서 유기농 우유와 일반 우유의 가격 차이까지 알아왔다. 눈썰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미경이가 손을 들었다.

  “처음에는 1L 안되는 것은 mL로 쓸 줄 알았어요. 그런데 0.5L 같이 쓰는 게 있어서 신기했어요. 백설유 작은 것이 0.5L였어요.”

  “참 신기하네. 1리터가 안 되면 mL로 쓰면 되지 왜 굳이 리터를 썼을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미경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 점이 궁금했다. 이것도 다음에 꼭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민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유가 제일 작은 것은 180mL로 되어 있고 큰 우유는 1L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유 단위가 다 같을 줄 알았는데 mL도 있고 L도 있어서 신기했어요.”

  민서 이야기도 흥미가 있었다. 대개 가장 작은 우유가 200mL인 줄 알았는데 180mL짜리 우유도 있다니 말이다. 민서 말로는 ‘하루우유’가 그렇다고 한다. 참 세심하게도 조사했구나 싶었다. 다음은 수인이 차례다.

  “큰 우유는 1L인 줄 알았는데 1000mL라고 쓰여 있었어요.”

  “왜 그렇지? 규리는 1L짜리가 많았다고 했는데?”

  “제가 본 건 1000mL라고 되어 있었어요.”

  이 점도 재미있었다. 1L와 1000mL는 결국 같은 들이인데 왜 어떤 물품에는 1L라고 쓰고 어떤 물품에는 1000mL라고 썼을까. 들이 단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고구마 캐듯 새로운 사실이 주렁주렁 달려 나왔다. 그만큼 조사해온 아이들이 신경 써서 조사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사하지 않았던 아이들도 직접 조사해보면서 살아있는 지식을 많이 쌓으면 좋겠다.


[덧붙임]

  지난 금요일은 학교 일로 무척 바빴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골(밀양)에서 일도 하고 묘사도 지내느라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실이야기를 쓴 이후 처음으로 사흘을 미뤘습니다. 오늘 오후에 방과 후 수업 갔다 온 규리가 이 점을 냉정하게 꼬집어주더군요.

  “선생님, 교실이야기도 안올리고 정말 실망이었어요.”

  미안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부리나케 써서 두 편을 같이 올립니다.

  그래도 지난 주 금요일 날 쓰기 시간에 썼던 글을 사진으로 찍어갔다가 토요일 저녁에 두 딸을 시켜서 타자를 치게 했습니다. 그러니 아주 게을리 한 건 아니지요?

  그리고 규리처럼 열심히 교실이야기를 읽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너무 고맙고, 못 쓰는 글이지만 더욱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명의 독자라도 있으면 열심히 쓴다는 게 내 생각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