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1월 17일 - 전도연 굴욕

늙은어린왕자 2010. 11. 18. 16:06

 11월 17일 수요일 맑음

전도연 굴욕


  우리 교실 뒤 게시판에는 달별 생일축하 사진이 붙어있다. 열두 달 가운데 열한 달은 그 달에 태어난 아이들 사진을 붙여두고, 생일이 아무도 없는 9월에는 내 사진을 붙여놓았다.

  사진 속에는 나와 영화 「밀양」의 주인공 전도연이 함께 서 있다. 영화 「밀양」 포스터에서 뒤쪽에 있던 송강호 얼굴 대신 내 얼굴을 살짝 합성해놓았기 때문이다.

  합성이 자연스럽게 된 데다 아이들이 「밀양」이란 영화나 배우 전도연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거부감 없이 잘 붙어 있다. 또 내가 밀양에서 나고 자라서 아이들은 그저 밀양에서 찍은 사진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합성 사진]

 

  어제 게시판을 정리하던 중에 이 사진을 골똘히 보고 있던 규리가 물었다. 

   “이 분 누구에요?”

  “응? 선생님 부인이야.”

  “으잉 설마.”

  “진짜야.”

  옆에서 작품을 붙이던 아이들도 끼어들었다.

  “근데 저 여자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난 영화배우인줄 알았네.”

  “너희들 섭섭하네. 아직까지 선생님 부인도 모르고 말야. 근데 선생님 부인 이뻐?”

  “안 어울려요.”

  “부인은 예쁜데 선생님은 시커먼 게 도둑 같아요.”

  “선생님이 부인에 비해서 나이 들어 보여요.”

  지난 3월에 사진을 붙인 뒤 이런 대화가 가끔 오갔다. 영화 「밀양」이나 배우 전도연이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전도연이 들으면 섭섭해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유치원 때 「밀양」이 영화로 나왔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이야기는 오늘까지 이어졌다. 은서는 지난 번 영상통화를 하며 보여준 아내 얼굴을 떠올렸다.

  “선생님, 저번에 통화할 때 본 얼굴이랑 사진이랑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아냐, 제대로 못 봐서 그렇지 똑같아. 그리고 그 때랑 머리 모양이 많이 바뀌었어.”

  “아, 어디서 봤더라.”

  은서는 기억을 떠올리려고 머리를 긁적이기만 할 뿐 시원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내친 김에 전체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저 뒤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부인인 줄 몰랐어?”

  “설마요.”

  “진짜요?”

  “내가 이야기 안 해서 그렇지. 진짜야.”

  “거짓말.”

  “거짓말 아냐. 그럼 누구인 줄 알았어?”

  “…….”

  전도연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젊고 유명한(?) 사람과 같이 있는 사진을 붙일 걸 그랬다. 하지만 일 년 가까이 꿋꿋하게 게시판을 지키며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전도연 배우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전한다.

  “얘들아, 사실 사진 속 여자 분은 영화배우 전도연이라는 사람이야. 인터넷에서 검색해봐. 부모님들은 대부분 알고 계실거야.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아주 훌륭한 배우이지. 재미로 붙였는데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런데 전도연 배우보다는 선생님 부인이 더 이쁘고, 남자주인공 송강호 보다 내가 더 미남인 건 사실이니까 이건 오해 없기를 바란다.”

 

[원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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