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1월 16일 - 못 말리는 체육

늙은어린왕자 2010. 11. 16. 16:19

11월 16일 화요일 찬 날씨, 맑은 하늘

못 말리는 체육


  둘째 시간에 소방훈련이 있었다. 마침 이 시간이 체육이라 아이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하필 지금 훈련해요.”

  “훈련 하고 체육 한 시간 꼭 해야 돼요.”

  지금까지 체육 수업을 어긴 적이 거의 없을 뿐더러 행사 때문에 빠진 수업도 웬만하면 챙겨주는 편인데도 체육이라 하면 사족을 못 쓴다.

  “안 돼. 이 훈련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고 전교생이 다 하는 거야. 내가 체육 수업을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아. 오늘은 훈련이 체육이야.”
  딱 잘라 말했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억지로 앉아 있는 꼴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우스웠다. 곧 소방차가 들어오고 커다란 호스로 물을 뿌리며 훈련이 시작되자 어느 새 관심은 훈련으로 쏠렸다. 소방관들이 불 끄는 모습을 보려고 서로 고개를 빼는 걸 보니 체육은 어느 새 잊은 듯 했다.

  그러나 늘어진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소방훈련이 시시하게 끝나자 아이들이 다시 기억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훈련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여기저기서 애원이 들려왔다.

  “선생님, 체육 해요.”

  “수학은 특활 시간에 하면 되잖아요.”

  “체육 안 하면 선생님 미워요.”

  단단하게 마음먹었는데도 간절한 아이들 목소리에 마음 한 귀퉁이가 조금씩 무너졌다. 몇몇 아이들이 내 앞길을 막아서고는 귀염 떠는 걸 보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만약에 소방훈련을 수학 시간에 했으면 수학 보충하자고 하겠니?”

  “네. 당연히 보충해야죠.”

  “그럼 오늘 7교시에 수학 보충할까?”

  “그래요.”

  틈새를 눈치 챈 아이들은 눈앞에 다가온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뒷일은 뒷일일 뿐이었다.

  “좋다. 체육하자.”

  마음을 모질게 쓰지 못하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환호하는 아이들을 이끌고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되돌렸다.

  “내가 부탁 많이 해서 그렇다.”

  “나도 얼마나 졸라댔는데.”

  등 뒤로 서로 자기가 체육 수업을 이끌어냈다며 도토리 키 재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아침에 불던 차가운 바람이 햇살에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