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2월 11일 - 고기반찬과 구제역

늙은어린왕자 2011. 2. 11. 18:07

2월 11일 금요일 구름 속 한 때 눈발 날림

고기반찬과 구제역


  급식 때 돼지고기가 나왔다. 배식 받아 자리로 가니 고기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의 공세가 시작됐다.

  “선생님 고기 하나만 주세요.”

  “고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고기 하나 주면 채소 반찬 드리지.”

  이러면서 재미있다고 키득거리는 녀석들에게 단호하게 안 된다고 잘라말했다. 하지만 옆에 앉은 정훈이는 뻔뻔스럽게 젓가락까지 들이댔다. 

  “정훈아, 집에서 고기 안 먹나? 고기만 보면 왜 이리 난리고? 할머니가 고기반찬 안 해주셔?”

  “우리 할머니는 구제역 때문에 고기 안 먹는대요.”

  “이거 말이냐?”

  마침 탁자 위에 놔둔 신문에 구제역 기사가 나서 그걸 가리켰더니 정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제역은 사람한테는 괜찮다는데 할머니한테 많이 사달라고 해라.”

  “그래야겠네요.”

  정훈이 목소리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한 개 주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지만 정훈이한테만 주면 난리가 날 것 같아서 참았다.

  신문을 힐끗 보니 구제역 바이러스에 걸린 돼지들이 똥 더미 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공무원들이 죽은 돼지들을 제대로 묻지도 않고 가 버리는 바람에 들짐승이나 새들이 와서 살점을 뜯어먹는 바람에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다른 사진에는 눈밭에 반 쯤 묻힌 새끼 돼지들이 있고 또 다른 사진에는 들짐승에게 뜯겨 머리와 꼬리만 앙상하게 드러난 돼지 뼈도 있었다. 한 마디로 비극이었다.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고기 맛이 뚝 떨어졌다. 사진 속에 비참하게 쓰러져 있는 돼지들이 마치 내 입 속에서 죽어가고 뜯기는 느낌이 들었다. 저 돼지들도 살아 있었다면 지금 내가 씹고 있는 이런 고기가 되지 않았을까.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힘겹게 살다가 나쁜 병에 걸려 죽어가지 않았을까. 나는 고기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이들은 대부분 나가고 채소 반찬과 국을 다 못 먹은 몇몇 아이들만 남았다. 정훈이 식판에는 나물 무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정훈아, 무슨 나물이 이래 많노?”

  “고기 먹어주고 아이들한테 받았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이 정훈이한테 고기를 다 주다니. 알고 보니 채소 반찬을 먹기 싫은 아이들이 정훈이한테 나물을 넘겨주고 고기 한 점을 대가로 주었단다. 그렇게 하고는 식판 다 비웠다며 모두 가버린 것이다.

  “너, 나물 다 먹어야 갈 수 있다.”

  “안 돼! 으윽!”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싸매던 정훈이가 먹는 척 했지만 아무리 봐도 오늘 안에 다 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몇 젓가락 먹는 걸 보고 그냥 보내주었다. 정훈이가 기분 좋게 일어서는 걸 보고 나도 따라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