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3월 18일 - 우는 즐거움

늙은어린왕자 2011. 3. 20. 19:46

3월 18일 금요일 맑음

우는 즐거움

 

 

 

  아침에 칠판 오른쪽 게시판에 타이틀 글자 붙이는 일을 했다. '배우는 즐거움'이라는 여섯 글자다. 연두, 풀빛 색상지를 상자 모양으로 여섯 개 접어서 그 위에 글자를 하나씩 붙여놓았는데, 손재주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 아내가 집에서 만들어준 것이다.

  이걸 보기 좋고 균형 잡히게 붙이려면 자로 게시판 길이를 재서 여섯 칸으로 나눈 뒤 붙여야 한다. 시계를 보니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가운데 선만 잡아놓고 눈대중으로 균형을 맞추어가며 붙이기로 했다.

  가운데 선 오른쪽에 먼저 '즐'자를 붙이고 그 다음 '는'을 붙이는 방식으로 '거', '우', '움'자를 붙여나갔다. 마지막 글자를 붙이기 전에 잠깐 뒤로 물러서 보니 균형이 잘 잡혀보였다. 혼자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배'자를 집어 드는데 등 뒤에서 아이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우는 즐거움'이 뭐예요?"

  "아, 그런가?"

  다시 살펴보니 타이틀이 정말 '우는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웃을 만 했다.

  "아, 아직 다 붙인 게 아니고 여기 한 글자 더 있어."

  이러며 '배'자를 들어 보여주었는데 장난 끼 넘치는 몇몇 아이들이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가 우는 게 그렇게 좋아요?"

  "야, 내가 아무리 나쁜 선생님이어도 학생들이 우는 걸 좋아할 리가 있겠냐?"

  "근데 저기는 '우는 즐거움'이라고 써놓았잖아요."

  "맞아요. 선생님은 작년에도 아이들 많이 울렸잖아요."

  "그랬나? 허 참."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하긴 작년에 아이들이 많이 운 것은 맞다. 그런데 그걸 다 내가 울렸단 말인가? 야단 쳐서 운 아이들도 있었지만 아파서도 울고 벌레 때문에도 울고 싸워서 운 아이들도 얼마나 많았는데.

  "우리 선생님은 아이들 우는 거 좋아한다고 엄마한테 말할 거예요."

  다시 게시판으로 다가가는데 진담 같은 농담이 뒤통수에 ‘퉁’ 하고 날아들었다. 얼른 '배'자를 붙이고 타이틀 붙이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