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4월 20일 - 외면당한 밥상머리 공부

늙은어린왕자 2011. 4. 22. 22:33

4월 20일 수요일
외면당한 밥상머리 공부

 

  급식소에서 아이들과 맛있게 밥을 먹는데 언뜻 국 안에 있는 재료에 눈길이 멈췄다. 숙주나물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젓가락으로 하나 건져서 식판 위에 올려놓았더니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물었다. 
  “선생님, 뭐예요? 벌레예요?”
  “아니, 이거 숙주나물인데 잘 봐. 과학시간에 공부한 게 그대로 있어. 이건 떡잎이고 이건 어린잎이네. 그리고 이건 어린뿌리.”
  젓가락으로 나물을 요리조리 펴고 젖혀보니 조금 전 과학 시간에 보았던 사진과 거의 비슷한 모양이 됐다.
  “와! 이거 진짜 공부한 거랑 똑같어. 야들아, 이거 봐.”
  내가 흥분하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았다.
  “그렇네요.”
  아이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다시 밥을 먹었다. 분위기가 시들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걸 들고 다른 아이들이 있는 탁자로 갔다.
  “야들아, 이거 봐라. 밥 먹다가 신기한 거 찾았다.”
  아이들이 밥 먹다 말고 내 손에 매달린 숙주나물을 보았다.
  “까악!”
  “치우세요! 더러워요.”
  지렁이라도 한 마리 발견한 듯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고 몸을 피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상한 거 아냐. 이거 숙주나물이야. 과학 시간에 공부한 거 다 있어. 한 번 봐봐.”
  보란 듯 탁자 가운데 턱 놓았더니 주위에 있던 식판들이 모두 저멀리 달아났다.
  “선생님 드세요!”
  “선생님 때문에 밥 맛 다 떨어졌잖아요!”
  밥도 먹고 공부도 좀 하자는 내 순수한 마음이 이렇게 비참하게 거부당하다니! 어쩔 수 없이 숙주나물을 다시 들고 왔다.
  “뭐가 이래 시끄럽노?”
  근처를 지나던 영양 선생님이 소동을 보고 다가왔다.
  “아니, 숙주나물로 공부 좀 하자니까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네. 괘씸한….”
  영양 선생님은 큰 눈을 껌뻑거리며 축 늘어진 숙주나물처럼 앉아 있는 나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들아. 너거 반에서 제일 개구쟁이가 누고?”
  영양 선생님이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묻자 성윤이가 뜨끔하며 대답했다.
  “저, 저요.”
  “아니, 아이들 말고. 내가 보기엔 너거 선생님이 제일 개구쟁이다. 어이구, 쯧쯧쯧.”
  영양 선생님이 가자 성윤이와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성윤아. 이거 봐라. 어린뿌리랑 잎, 떡잎이 그대로 다 있어. 이런 걸로 공부하자는 게 뭐 잘못 됐나?”
  잠시 뜸을 들이던 성윤이가 대답했다.
  “아뇨. 이런 걸 거부하는 아이들이 이상한 거죠.”
  “맞제?”
  홀애비 마음은 과부가 알아준다더니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성윤이 밖에 없다. 녀석, 마음에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