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7월 8일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늙은어린왕자 2011. 7. 11. 18:20

7월 8일 금요일 오전에 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도덕 수행평가를 하면서 우리나라꽃 이름과 그 꽃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무궁화’는 쉽게 맞혔지만 보았다는 대답은 한 명도 내놓지 못했다.
  이 결과를 보면서 어쩌면 아이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지 않아도 흔히 보이는 벚꽃이나 개나리와 달리 무궁화는 일부러 물어서 찾아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꽃이라는 무궁화는 애국가에는 자랑스럽게 등장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그림 속의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쯤 밀양 삼문동에서 가곡동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 강둑길에 묘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둑길을 따라 가면 강 가 쪽인 길 오른편에 어른 키만 한 어린 무궁화가 줄지어 서 있고 왼 편에는 일본 사람들이 심었다는 80년 이상 된 아름드리 벚꽃이 역시 줄지어 서 있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밀양시에서 강변에 넓은 유채꽃밭을 가꾸어 꽃 잔치를 벌이곤 했는데 마침 둑길에 화려하게 핀 벚꽃과 잘 어울려서 시민들이 많이 찾곤 했다. 화려한 벚꽃과 노란 유채꽃 사이에서 사람들이 오가는 데 거치적거리는 천덕꾸러기였던 무궁화는 7~8월이면 수줍은 꽃을 피우곤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두 해 지난 뒤 강둑길을 다시 찾았더니 어찌된 일인지 강둑길을 따라 늘어서 있던 무궁화는 한 그루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린 벚나무가 차지하고 있었다. 관리하기 힘들고, 꽃 피워봐야 찾는 사람도 없고, 벚꽃․유채꽃 잔치에 거치적거리기만 하니까 밀양시에서 바꿔버린 모양이었다. 무궁화를 가꾸어야 할 관청에서 무궁화 없애기에 앞장서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무궁화 알기를 기대하는 건 고목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우리 학교 화단에는 무궁화가 잘 가꾸어져 있다. 그리고 7월인 지금 꽃이 활짝 피어 있다. 평가점수를 매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궁화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꼬셨다.
 “지금 화단에 무궁화 꽃이 활짝 피어있는데 본 사람 아무도 없죠? 밖에 나가서 무궁화 꽃과 사진 찍는 사람은 수행평가 만 점 주겠습니다.”
  만점에 눈 먼(?) 아이들은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리고 중앙현관 앞 화단에 활짝 피어 있는 무궁화 꽃에 얼굴을 대고 한 명씩 차례로 인증샷을 찍었다.
  아마 오늘 무궁화와 사진을 찍은 아이들은 적어도 무궁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봤는지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무궁화 꽃은 더 이상 애국가 가사에, 그림 속에서만 등장하는 꽃이 아니라 내 생활 속 어딘가에 피어있는 살아있는 꽃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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