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수요일 때때로 비
그림책 만들기 준비
알림장에 무척 기대되는 과제를 냈다. <듣기말하기쓰기> 7단원 수업에 쓸 조사과제다.
1.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2.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여 부모님께 이야기 듣고, 들은 이야기를 나눠준 종이에 써오기
<듣기말하기쓰기> 7단원에는 그림책을 만드는 활동이 나온다. 직접 줄거리와 장면을 짜고 그림책을 만들어보면서 재미를 느끼게 하는 활동이다.
교과서에는 그림책 내용으로 옛이야기나 재미있고 우스운 이야기, 부모님 어린 시절 이야기 또는 친구들과 겪은 이야기를 예로 들어놓았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부모님 어린 시절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기로 했다. 부모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마땅한 게 없으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좋다고 했다.
이렇게 정한 까닭은 부모님이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이야기이면서 아련한 동화 같은 느낌을 줄 것 같아서다. 또 옛이야기나 우스운 이야기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흔히 있어서 읽는 재미가 떨어지고 친구들과 겪은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면 생활만화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쓸 종이를 나눠주고 분위기를 살펴보니 대부분 부모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예로 들어준 내 어린 시절 이야기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만약에 우리 딸이 내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묻는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산돼지 이야기야. 진짜 산돼지는 아니고 우리 옆집에 살았던 한 살 많은 형 별명이 산돼지였거든. (줄임) 여러분도 부모님한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면 이런 이야기를 분명히 들려주실 거야. 만약 부모님이 시간이 안 된다면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들어도 좋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장면을 나눠서 그림책으로 만들면….”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종이에 담아올 지 무척 기대가 된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한 토막씩은 지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재미있는 그림책이 되지 않을까?
[덧붙임] 산돼지 이야기
내가 자란 곳은 밀양 무안의 어느 산골이야. 찻길이 없어서 자동차 구경을 못한 것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전기도 없어서 호롱불을 켜고 살았던 궁색한 곳이었지.
우리 마을은 '새마'라고 불렀던 영신동이었는데 20가구 정도가 오손 도손 정을 나누며 살던 정겨운 곳이었어. 작은 마을치고는 또래 아이들이 꽤 많았는데 내 동갑내기만 해도 넷이나 되었단다. 그러나 남자는 나를 합해서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형, 동생들과도 쉽게 어울리곤 했어. 나와 가장 잘 어울린 동무는 바로 옆집에 살았던 한 살 많은 형과 그 옆집에 살았던 동갑내기 그리고 두 살 아래인 그의 동생이었지.
우리는 날만 밝으면 잠잘 때까지 같이 놀았어. 참꽃 따먹기, 버들피리 만들기, 찔레 순 따기, 냇가에서 미역 감기, 고무신 차 놀이, 술래잡기, 활 만들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딱총 만들기, 팽이 돌리기, 자치기, 산에 올라 열매따기, 얼음지치기, 눈썰매 타기, 연날리기, … 놀잇감을 찾고, 만들고, 놀기까지 모두 함께였지.
그런데 우리 넷 가운데 옆집의 형은 좀 사나운 면이 있었어. 힘이 세어서 '산돼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와 늘 같이 놀았지만 조금 거리도 있었어. 잘 놀다가도 툭하면 심술을 부려 판을 깨는 것이 그의 특기였거든.
예를 들어 구슬치기를 하다가도 자기가 따면 놀이가 계속되는데 자기가 잃으면 일부러 던져서 구슬을 깨거나 발로 차버리는 경우가 많았어. 심지어는 자기가 잃은 것을 힘으로 되찾기도 하였지. 딱지치기나 팽이 돌리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놀이에서도 상황은 똑같았어.
그러다 보니 우리는 늘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겠지? 하지만 같이 놀지 않을 수는 없었어. 술래잡기나 자치기 같은 놀이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놀이를 하려면 적당한 사람 수가 있어야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산돼지'와 함께 해야 했거든. 어떨 때는 '산돼지'의 강요로 놀이를 억지로 하는 경우도 있었어.
어느 봄날이었어. '산돼지'를 제외한 우리 셋은 파랗게 뒤덮인 보리 싹 위에 드러누워 놀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어. 셋이서 힘을 합쳐 '산돼지'를 혼내주자는 것이었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 전날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했는데 우리가 그 '산돼지'한테 다 잃거나 빼앗긴 일이 있었을 거야. 우리는 쉽게 뜻을 모았어. '산돼지'를 불러내어 보리밭에 넘어뜨려서 발로 밟아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어.
드디어 동갑내기 친구가 가서 그 형을 불러왔어. 아마 같이 놀자고 거짓말을 하고 불러왔을 거야. 나와 동갑내기의 동생은 보리밭에 누워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사실 난 그 순간 일이 잘못돼서 그 형한테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어.
마침내 그 형이 가까이 왔어. 길게 찢어진 눈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오는데 진짜 산돼지 한 마리가 걸어오는 것 같았지. 산돼지가 가까이 오자 동생이 잽싸게 공격을 해서 그 형의 다리를 걸어 넘겼어. 동생이 힘이 셌거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와 동갑내기가 형의 몸 위에 올라탔어. 동생은 다리를 잡고 나와 동갑내기는 얼굴과 가슴을 사정없이 공격했지. 주먹으로 치고 발로 밟고 …. 얼마 지나지 않아 산돼지의 얼굴은 눈물과 흙이 범벅이 되고 말았어.
일을 끝내고 우리는 막 뛰었어. 동갑내기 형제는 자기 집으로, 나는 우리 집으로 뛰었지.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어. 뭔가 큰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 형이 벌일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야.
집에 숨은 지 한참이 지났을까. 밖이 잠잠해서 살짝 골목으로 나와 보았지. 동갑내기 친구 집을 가려면 그 형 집 대문 앞을 지나야 하는데 큰마음을 먹고 살금살금 갔어.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어. 저 쪽 골목 끝에서 그 형이 아직 눈물범벅이 된 채 한 손에 커다란 돌멩이를 들고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어? 어찌나 놀랐던지. 나는 뭐라도 잡고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어. 그것은 바로 바짝 마른 탱자나무야.
그 형 집 대문 앞에는 약재로 쓸 함박꽃이 가득했던 밭이 있었어. 우리 밭이었는데 울타리가 모두 탱자나무로 둘러쳐 있었지. 여름이면 냇가에서 잡은 다슬기를 삶아 알을 빼먹을 때 그 탱자나무의 가시를 이용하곤 했어. 탱자나무 울타리 한 귀퉁이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는데 그 입구를 바짝 마른 탱자나무로 가려두곤 했거든. 바로 그걸 손에 든 거야.
그 형이 다가오자 나는 뒷일은 생각지도 않은 채 사정없이 머리에 내리쳤어. 그러자 그 형의 빡빡 깎은 머리와 목덜미에서 빨간 피가 흘러내리는 거야. 형은 피를 보더니 더 크게 울어댔어. 울음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동네가 울릴 정도야.
어쩌겠어? 또 막 뛰었지. 그런데 이번엔 정말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피까지 났으니까 말야.
일단 우리 집으로 갔는데 숨을 곳이 뻔하니까 갈 데가 없더라구. 할 수 있나? 집 뒤편 굴뚝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지.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가슴 뛰는 소리가 그 형 울음소리만큼 크게 나는 거야. 엄청 무섭고 불안했지.
조금 지나자 그 형 어머니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어.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그 형도 같이 왔나봐. 나는 겁먹은 채 숨죽이고 앉아있기만 했어. 야단치는 소리를 치면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지만 다행히 굴뚝까진 안 왔어.
그러더니 조금 있으니까 집이 잠잠해지는 거야. 나를 못 찾으니까 그냥 갔나봐. 휴~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 하지만 나올 수는 없었어. 바로 옆집이 그 형 집인데 담벼락 위에서 보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말야.
그래도 아무 소리 안 들리니까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어. 이런 저런 걱정은 들었지만 마음은 아까보다 편해졌어.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그만 잠이 들었던 모양이야. 눈을 떴을 땐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해졌으니까 말야.
그날 밤에 어찌됐냐구? 그건 상상에 맡길게. 더 알면 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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