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9월 27일 - 풀 죽은 성윤이

늙은어린왕자 2011. 9. 28. 00:20

9월 27일 화요일 가을하늘에 흰 구름 두둥실. 새벽에 15도까지 떨어짐.

풀 죽은 성윤이

 

 

  아침에 성윤이 어머니한테서 문자 연락이 왔다. 어제 급식소에서 다시마 먹고 배탈이 났다며 관심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녀석은 겉으로 봐선 멀쩡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보통 때와 달리 말이 없는 걸로 봐선 뭔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1, 2교시에 과학 수업을 무사히 다녀온 성윤이는 3교시가 체육인데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책만 보고 있었다. 무슨 심보인지 스스로 아프다는 말도 않고 아프냐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금 아팠다면 엄살을 엄청 떨 녀석인데 이런 모습이 오히려 많이 안 좋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가 나갈 때쯤 처음으로 한 마디 건넸다.

  “저, 이번 시간에 여기 있을게요.”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아마 엄마 문자를 안 봤다면 버럭 화를 내며 쫓아낼 상황이었다. 남에게 쉽게 굽히려 하지 않는 녀석의 자존심이 느껴졌다.

  “왜? 혹시 너 어제 다시마 많이 먹더니 배탈 난 거 아냐?”

  모른 체 하며 넌지시 물었더니 녀석이 고개를 들고 피식 웃었다.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뻔하지. 너 어제 다시마 엄청 먹었잖아. 다시마 좋아한다며 친구들 것도 다 가져와서 말야.”

  어제 녀석은 내가 봐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다시마를 많이 먹었다. 급식판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시마를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니까 말이다. 아이들은 먹기 껄끄러워 하는 반찬을 달라고 하는 녀석에게 고맙게 내주었다. 심지어 나한테도 달라며 급식판을 들이대더니 결국 그게 탈이 난 모양이었다.

  녀석은 족집게 도사를 만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 하도 말이 많아서 제발 하루라도 입 좀 다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오늘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그래도 아파서 말도 없이 앉아 있는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체육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녀석이 다가오더니 등을 내밀었다.

  “등 좀 두드려주세요. 시원하게 내려가게요.”

  스스로 나와서 부탁까지 하는 걸 보면 아까보단 나아진 모양이었다. 덩치가 작아서 두드릴 곳도 없어 보이는 등을 잠시 두드려 주었더니 시원하다며 애늙은이 소리를 냈다.

  “근데 다시마는 좋은 음식인데 왜 배탈이 난 걸까?”

  녀석도 이 점이 궁금했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다시마 배탈’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에는 대부분 다시마가 몸에 좋다는 말 뿐이었다. 다시마와 배탈은 관계없다는 결론을 내릴 즈음 책 소개란에 눈에 띄는 구절이 보였다.

 

  ‘해조류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과 소화불량이 생긴다.’

 

  녀석은 이제야 원인을 제대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앞으로는 좋아한다고 해서 녀석이 다시마를 한꺼번에 많이 먹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말 많기로 유명한 악동 세 명 가운데 한 명의 배탈 덕분(?)에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교실이 조용했다. 그럼 앞으로 악동 세 명이 번갈아가며 아프기를 바라야 하나? 그러면 내가 너무너무 나쁜 선생님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