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화요일 구름 조금
티격태격 남녀 토론
드디어 남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학급회의가 열렸다. 의제는 예고했던 대로 ‘여학생들의 폭력 문제’이다. 진행은 2학기 봉사위원인 (안)유진이와 (김)현민이가 하고 순서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하기로 했다. 좀 길지만 회의내용을 옮겨본다. 회의 때 메모한 것을 보며 다시 정리한 내용이어서 실제와 조금 차이가 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유진이가 개회를 선언하고 간단하게 국민의례를 한 다음 제안 설명 순서로 넘어갔다. 첫 번째 제안자는 지상이였다. 지상이는 제안 설명을 하려고 할 말을 공책에 빽빽하게 적어왔다.
“여학생들의 폭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많이 맞아봤지만 선생님이 안 보실 때 때리고 발로 차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옷도 늘어졌습니다. 그리고 폭력을 안 쓴다고 했으나 정모씨에게 폭력을 쓰고 이유 없이 때리고 욕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뒤 지상이는 공책을 들여다보았다. 공책에는 우리 반 누리집에서 여학생들이 써놓은 글을 옮겨놓았다.
“강모씨는 홈페이지에 ‘박지상을 죽이자.’, ‘박지상 땜에 짜증난다.’, ‘그런 식으로 살지마.’ 이렇게 써서 정신적 피해도 주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사회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몇몇 여학생들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아랑곳 않고 이번에는 성윤이가 제안 설명을 하겠다고 했다.
“체육시간에 손모씨는 이유 없이 모래를 뿌리고 이모씨도 밀었습니다.”
성윤이는 흥분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진행자인 유진이가 여학생들에게 반박기회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의제토의에 들어갔다. 먼저 민서가 나섰다.
“솔직히 남자들이 먼저 시비를 걸고 이상한 짓을 합니다. 정신 이상자처럼 행동하는데 폭력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미경이도 민서를 거들었다.
“폭력 쓴 우리 잘못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말로 해도 나대기 때문에 때립니다.”
민경이도 미경이와 같은 내용으로 반박했다. 그러자 남학생들이 무더기로 손을 들었다.
“그럼 체육 시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보십시오.”
“여학생들은 아무 일 없이 때립니다.”
“입이 있는데 말로 안 하고 손이나 발이 먼저 나옵니다.”
여학생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가 참아도 박지상은 계속 놀리고 만나면 놀립니다.”
“항상 남자 먼저 시비를 겁니다.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이 때 흥분한 현수가 불쑥 일어나더니 할아버지가 손자 나무라듯 소리쳤다.
“좋은 말로 하면 되지. 처음부터 욕을 써!”
남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현수를 응원했다. 학급회의가 선거판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 무렵 합창단원 여섯 명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남학생 한 명에 여학생 다섯 명이었다. 입심 좋은 여학생들이 빠져나가자 남은 여학생들은 풀이 죽은 반면 남학생들은 기세가 올랐다.
한동안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이유도 없이 폭력을 쓴다고 하고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이 먼저 시비를 건다는 내용이었다. 더 이야기해봐야 같은 내용일 것 같아서 표결 순서로 들어갔다. 먼저 표결할 내용을 받았다. 남학생 쪽에서 지상이가 나섰다.
“여학생들은 성격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혈질에다가 툭하면 발을 댑니다. 이모씨는 박모씨에게 헤드락을 하고, 손모씨는 제 다리를 차서 멍이 들고 상처가 났습니다. 또 손모씨 발에 밟혀 등에 자국이 났습니다.”
지상이는 증거물로 발자국이 찍혀 있는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지상이는 아직 제안 설명 때 하지 못한 말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사회자가 표결할 내용을 말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지상이가 주의를 받아들이고 말할 내용을 정리하는 동안 수민이와 현수가 이어서 말했다.
“여학생들의 폭력은 이 시간부터 없어야 합니다.”
“여자가 한 대 때리면 앉았다 일어서기 100번 해야 합니다.”
유진이는 남학생들이 말한 내용을 칠판에 썼다. 다음은 한별이였다.
“여자는 모두 무인도로 보냅시다.”
엉뚱한 한별이 주장에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었다.
“우리가 먼저 놀린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집단 폭력은 뭡니까? 한 명이 살짝 때리는 건 괜찮지만 집단 폭력은 하지 맙시다.”
(김)현민이 말이 끝나자 남학생들이 술렁였다.
“우리가 뭘 놀려?”
“놀린 건 사실이잖아.”
“아니지!”
“놀린 건 인정해야지.”
“뭔데?”
논란은 한동안 계속되더니 잠잠해졌다. 다시 지상이가 말했다.
“여학생이 때릴 때마다 벌 서야 합니다.”
시현이도 한 마디 했다.
“때릴 때 발로 밟고 팔꿈치로 때리고 주먹으로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현민이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자기 생각을 밝혔다.
“놀린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안 놀리는데 때리면 안 됩니다. 놀리지 않을 테니 때리지 맙시다.”
현수도 현민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우리가 놀려도 말로 합시다.”
여학생들 중에서는 채미가 나섰다.
“남학생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놀립니다. 여자는 그런 말 한마디에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남학생들 먼저 놀리지 맙시다.”
여학생 쪽에서 표결 내용이 더 나오지 않자 성윤이가 의견을 냈다.
“이○○, 손○○는 심심풀이로 때립니다. 몸이 근질근질하고 심심하고 화날 때마다 때립니다. 말이 됩니까? 여학생들은 반성부터 해야 합니다.”
성윤이를 끝으로 표결 내용 발표를 끝내고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은 각 의견마다 손을 드는 방법으로 했다. 마침 합창단원들도 돌아와서 함께 표결에 참여했다. 다음은 표결 결과다. (진하게 표시하고 밑줄을 그은 것은 과반 수 이상 찬성을 받은 의견이다.)
*여학생의 폭력은 이 시간부터 하지 않기 (찬성 12명)
*여학생이 한 대 때릴 때 앉았다 일어서기 백 번 하기 (찬성 12명)
*여자 모두 무인도로 보내기 (찬성 3명)
*집단 폭력 하지 않기 (찬성 17명)
*때릴 때마다 벌 서기 (찬성 11명)
*남학생 먼저 놀리지 않기 (찬성 11명)
*놀리지 않으면 때리지 않기 (찬성 21명)
*놀려도 말로 하기 (찬성 15명)
*여학생은 반성부터 하기 (찬성 3명)
사회자가 과반 수 이상 표를 받은 의견을 잘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고 회의를 끝냈다.
회의가 끝난 뒤 지상이는 1차 목표를 이루었다며 좋아했다. 시현이는 남자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하더니 다음 회의 때는 여학생들의 욕설에 관해서 회의를 하자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여학생들은 말로 해도 계속 나대면 어떡하는지, 집단 폭력이 안 되면 개인 폭력은 되냐고 묻기도 했다. 한별이는 결과야 어찌됐던 회의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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